조급한 對北 ‘노크’, 상투적 ‘반응’

북한을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각은 오류다. 그랬으면 좋지만 북한은 다르다. 단순한 사회주의 정권이라면 벌써 개혁개방에 나섰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유가 동구권 붕괴이후 더욱 강도높게 다진 김일성주의에 있다. 김일성주의는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로 폐쇄사회에서나 가능한 체제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대통령이 그제 재향군인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혁개방을 촉구하면서 중국·베트남과 비유했다. 정말 같다고 보고 말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 연유가 어떻든 베를린 선언이후 며칠새에 대북 제스처가 부쩍 는 것은 정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송위원 면담 자리에서는 ‘베를린선언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전직 대통령들과의 회동에서는 ‘북한이 응할 것’이라고 했다. 육사졸업식에서는 ‘어떤 레벨의 당국자회담도 응하겠다’고 했다. 베를린선언과 관련, 미국에 보낸 이정빈 외교는 ‘북한의 테러문제는 응징보다 재발방지가 중요하다’며 테러지원국 해제조건으로 랑군폭파, KAL기 폭파사건 등을 묻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대통령의 재향군인회 간부들 접견이 있던 날 중앙방송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노동신문 논평을 보도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소위 통일애국인사 활동보장,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긍정적 변화 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이뿐 아니다. ‘남조선 집권자가 최근 해외에서 북남관계의 연설을 하면서 무슨 선언이란 것을 발표…’라고 한 방송보도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 비하의 어투로 보인다.

가관인 것은 북한의 보도내용보다 우리측 대응이다. 중앙방송을 가리켜 ‘북한이 베를린선언의 대응방법을 둔 내부조율 과정에서 1차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통일부 당국자의 논평은 제정신인지 의아스럽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냉전종식은 우리 역시 대통령 못지 않게 열망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유도해야 한다는 고충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벌이는 대북노크는 틀렸다. 북한 문제는 보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내외정세와 함께 신축성, 의연성 있는 객관적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같아서는 설사, 북한이 대좌에 나온다 해도 적당한 구실로 저들에게 일시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다. 남북문제를 치적화에 급급하는 일방적 과욕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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