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이수복(李壽福) 시인의 ‘봄비’라는 詩다.

산과 들을 적시는 봄비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봄엔 풀리게/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풀리게 하옵소서./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초록의 눈물, 그리고 땅속의/벌레들 마저 눈뜨게 하옵소서./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새 소리, 물 소리에/귀는 열리게 나팔꽃인양,/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불붙게 하옵소서”

연천 태생의 박희진(朴喜璡) 시인의 ‘새봄의 기도’라는 詩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리던 봄비가 16일 전국적으로 내렸다. 잠시 내린 이 봄비로 지난 2월 19일부터 한달가량 전국에 내려졌던 건조주의보가 경기도와 서울, 강원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제됐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도와 인천에 적게 내려서인가, 도무지 봄비가 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정치꾼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연이 오염되었는가, ‘봄은 찾아 왔는데 봄이 정녕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李白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수복의 ‘봄비’같은 봄비가 온누리에, 그리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속에 종일 내려 박희진의 ‘새봄의 기도’처럼 나뭇가지마다 초록눈물이 맺혔으면 좋겠다.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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