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민족시인 노작 홍사용(洪思容·1900∼1947)이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먹실부락에서 태어난지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와 오산시지부는 그의 탄생일인 오는 6월18일(음력 5월17일)에 즈음해 17일부터 19일까지 3일동안 기념문집 발간과 심포지엄 등을 계획하고 있어 재평가작업이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사용이라는 이름은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구는 모든 이의 기억속에 아직 남아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있는 땅은 모두다 왕의 나라로소이다”
1923년 문예지 ‘백조(白潮)’ 3호에 발표한 이 시는 당시 일제 식민치하에서 억눌린 지식인의 심정과 민족의 설움을 애절한 시어로 형상화한 대표적 산문시이자 한국 낭만주의 시사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홍사용은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그의 일생은 ‘이슬에 젖은 참새’로 풀이되는 노작(鷺雀)이라는 호처럼 비애에 찬 것이었다.
시인 조지훈이 ‘인간 노작’이라는 글에서 폐결핵으로 47세에 생을 마감한 그를 “청빈(淸貧)과 고절(孤節)속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회상했을 만큼 선비같은 고고함을 지키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다갔다. 16세에 상경한 그는 이후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했고 평생 시집 한권 출간하지 못했다.
또 1922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백조’의 주축 인물로 박종화, 현진건, 박영희 등과 함께 활동했으나 그들보다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연극, 희곡, 소설, 수필 등 다방면에 걸친 글쓰기는 그를 한가지 이미지로 부각시키지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다수 낭만주의 시인들이 외국풍조에 휩쓸릴 때 민중의식이 스민 민요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 서정성을 끝없이 탐구하고 형상화한 흔치 않은 시인임에 분명하다.
조병화시인은 그를 가르켜 ‘당대 가장 절실했던 문제에 대해 온 겨레의 심금을 울리고 위로한 진정한 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족시인 홍사용 탄생 100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적 위업과 작품의 재조명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신현상기자 hsshi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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