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아니라고 해서 멸시하거나 충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19일 오후 1시15분 서울 저동 영락교회 사택에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경직 목사가 1984년 10월 한국 개신교 100주년사업협의회 총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902년 평남 평원군 공덕면에서 출생한 한경직 목사는 평양숭실전문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1945년 서울 영락교회를 창립, 1973년까지 담임하면서 한국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목사는 일생동안 ‘교회사랑, 민족사랑, 하나님사랑’을 내세우며 한국 교회와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 기독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큰 존경을 받았다. 특히 한 목사는 소천하는 날까지 통장·집·재산이 없는 ‘삼무(三無)의 삶’을 살면서 온 몸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 살아 있는 성자로 추앙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선명회’를 조직해 전쟁고아·장애자들을 보살폈으며 교육에 정성을 쏟아 대광중·고, 서울여대 등 여러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1973년 이후 남한산성의 6평 남짓한 방에 머물며 사랑, 진실의 실체를 보여준 한 목사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린턴 상을 수상한 후 상금 1백만달러를 통일과 북한 선교 헌금으로 쾌척했다.
“인간의 삶에는 믿음·소망·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는 원수를 용서하시는 종교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독일처럼 남북한도 멀지 않아 통일될 것입니다.”
‘일부 대도시 교회 목사의 호화스러운 생활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한 목사는 “백두산의 튼튼한 소나무로 북녘 고향 땅에 교회지어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었다. 24일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 영락동산에 안장되는 성자의 생애가 실로 성스럽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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