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요 한국문학사에서 제일의 천재 여류시인이라는 허난설헌(1563~1589)의 한시(漢詩) 중 상당수가 중국 시를 베끼거나 베낀 흔적이 역력하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실 허난설헌 작품이 표절이라는 지적은 이미 그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공식 제기한 것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끊이지 않았으나 몇몇 작품 위주였고 종합적인 고찰은 없었다.
더구나 허난설헌이라는 이름이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우뚝해서인지 현대 한국한문학계에서는 표절 문제를 고의로 피해갔다.
하지만 중문학 및 한중 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박현규교수가 현존하는 허난설헌 작품을 종합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중국 한시를 베끼다시피 한 표절임을 밝혀냈다고 2일 말했다.
박 교수는 먼저 허난설헌 한시들을 청나라 강희제의 명으로 전체 당나라 시작품을 모은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중국 시들과 비교했다.
박 교수는 허난설헌 작품이 표절이다 아니다 하는 판단 근거를 “다른 시에서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베꼈을 경우”로 설정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조사대상 작품 중 대다수가 중국시에서 베껴왔거나 그런 흔적이 농후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표적인 표절작품의 실례로 10개를 들었다.
예컨대 ‘축성원’(築城怨)이란 작품은 백거이와 쌍벽을 이뤘던 원진(元桭)이라는 중국시인의 ‘고축성곡’(古築城曲)을 한 글자만 빼놓고 그대로 베꼈으며, ‘가객사’(賈客詞)는 양릉(楊凌)의 ‘가객수’(賈客愁)를 몇 글자만 고쳤다.
또 ‘빈녀음’(貧女吟)은 장벽(張碧)이라는 시인의 ‘빈녀’(貧女)를 표절했고 ‘양류지사’(楊柳枝詞)는 당나라 때 이익(李益)이 쓴 ‘도중기이이’(途中寄李二)와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들 작품은 누가봐도 표절로 밖에 볼 수 없는 경우이고 다른 허난설헌 작품 곳곳에서도 당시(唐詩)에서 베껴온 구절들이 부지기 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마디로 현존하는 허난설헌 작품중에는 표절 흔적이 매우 역력하다는 결과를 얻었으며 이로써 지난날 허난설헌 작품의 표절시비에 대한 논쟁이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