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부엌 아궁이 불씨를 사계절 꺼뜨리지 않았다. 화롯불은 여름철에 꺼뜨려도 아궁이 불씨는 집안의 며느리 대대로 살려 내려갔다. 어쩌다 불씨를 꺼트린 며느리는 조상에 큰 죄를 진게 되어 대성통곡했다.

조선조 말 유황을 성냥개비같은 나무나 종이심지끝에 바른 유황성냥이 나오긴 했으나 이 역시 불씨에 대어야 발화되므로 불씨는 여전히 소중하였다. 1910년대 신 문물 도입에 따라 화약으로 만든 성냥이 보편화된 것은 불의 생활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성냥이 나오기전의 담뱃불은 화로를 이용할 수 없는 여름이나 야외에서는 부싯돌로 댕겼다.

부싯돌을 마주쳐 생긴 화점이 부싯돌에 댄 마른 쑥에 점화, 모락모락 타는 화기에 대고 담뱃불을 붙이곤 했다. 담배쌈지와 함께 부싯돌 쌈지 또한 필수품이었다. 이러던 것이 성냥이 대중화되면서는 아궁이 불씨도, 부싯돌도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1945년 광복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퍼지기 시작한 라이터는 마침내 성냥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군용이었던 지포라이터는 특히 인기를 끌었다. 라이터가 대중화하면서 갖가지 모형이 유행됐었다.

화목연료에서 연탄을 거쳐 가스가 널리 생활화하면서는 성냥이 완전히 필요없게 됐다. 금연풍조가 확산된 탓도 있지만 라이터마저 유행을 타는 시대가 지나 지금은 값싼 3백원짜리 플라스틱 라이터를 많이 쓴다.

그런데 이 플라스틱 라이터가 문제다. 액화가스는 그대로 있는채 고장이 잘나 쓰다 버리기가 일쑤다.

업소 선전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플라스틱 라이터는 거의 독점상품이 되다시피하고 있다. 부실품으로 소비자들을 골탕먹이곤 하는 것은 장인정신이 없는 탓이다. “라이터 고장이 역겨워 담배를 끊겠다”는 애연가들이 더러 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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