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사를 개척한 문인 중 한 사람인 시인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은 1900년 음력 5월17일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출생했다. 부친 홍철유(洪哲裕)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 헌병부위를 지낸 인물로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에 많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노작은 생후 100일만에 부친의 근무처를 따라 서울 재동에서 9세까지 유년기를 보냈으나 부친의 타계와 함께 곧 그의 본적지인 석우리로 왔다. 노작은 석우리에서 한학을 수학했으며 17세 때 다시 상경,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휘문의숙 재학시절 정백(鄭柏), 박종화(朴鍾和) 등과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노작은 1919년 3·1기미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됐으나 같은 해 6월 풀려 나와 고향에 돌아왔는데 이후 문예지 ‘백조(白潮)’와 사상지 ‘흑조(黑潮)’ 창간을 준비하였다. 문예지 ‘백조’만을 창간한 노작은 여기에 ‘나는 王이로소이다’ 등 다수의 시, 소설, 수필을 발표했으며 연극활동에도 참여, 극단 토월회(土月會) 등에서 다수의 희곡 창작과 함께 연출을 맡았다.
올 곧은 선비정신으로 천석지기의 재산을 민족문단에 내놓은 노작은 친일행적이 전무한 해방공간에서 근국청년단(槿國靑年團)운동을 일으키려 했으나 1947년 서울 마포구에서 별세했다.
출생지는 용인, 성장지는 화성이지만 당시가 수원군 시절이었으므로 노작 출생지는 보통 수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17,18일 이틀간 오산대학과 석우리에 있는 노작 묘소 시비 앞에서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 화성지부, 오산지부 주최로 ‘노작 홍사용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가 열렸다. 한국근대 서정시 개척자요, 민족시인인 노작의 문학업적을 기리기 위해 열린 이날 문학제에 참석한 강성구 국회의원, 우호태 화성군수, 유관진 오산시장은 매년 지속적인 문학제 개최를 희망했다. 특히 문인이기도 한 우호태 군수는 ‘노작 문학상’제정 의사도 밝혔다. 문학과 민족을 위하여 의롭게 생애를 마친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학정신이 향리에서 면면히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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