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세이>소록도에 심은 꿈, 어린이연극

소록도에 심은 꿈, 어린이연극

소록도.현대인은 누구나 아우슈비츠를 하나쯤 품고 산다던가. 어찌 아우슈비츠뿐일까. 소록도도 우리 가슴 한켠에 잘잡은 아픈 섬, 막연히 마음의 빛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리라.

<꿈꾸는 어린이극장> 의 소록도 공연 동행 제안에 선뜻 응하며, 나는 자꾸 한하운 시인의 시를 되삭였다. 나병이라는 천형 속에서 이 나라 산하를 떠돌며 시를 쓴 한 시인의 영상 위로 어둑한 섬이, 고통스런 사람들 모습이 겹쳐왔다. 지금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이들은 그 섬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7월 10일 저녁 8시 30분, 극단의 식구들과 버스에 오르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태풍 예보 속에 점점 굵어지는 빗발이 걱정을 물고 왔지만 새벽 녹동항에 도착하니 비도 바람도 그쳐 있었다. 출렁이는 바다에 나란히 정박한 배들. 그 너머로 섬 같지 않은 섬이 한 보였는데, 그게 바로 소록도란다. 아니,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소록도가 있었단 말인가. 배를 타고 어쩐지 묵직해지는 마음을 한참 추스려야만 닿을 섬이려니 했는데 가까운 거리가 더 아리게 찍혀 왔다. 지척이 천리라더니…

배를 타고 5분쯤 갔을까. 금방 섬에 내려 깨끗한 길을 맑은 새소리와 더불어 가니 예상대로 작고 아담한 학교, 소록도 분교가 바다를 바라보며 하모니카처럼 앉아있었다. 운동장 끝이 바다인 학교,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바다를 만지고 올 수 있겠다. 섬은 평화로워 보였고 아이들도 밝아서 난, 밖에서 품었던 감상을 슬며시 문질러버렸다.

짐을 풀자 바다로 달려나가 한껏 마음을 담근 뒤, 단원들은 연습을 시작했다. 연극 무대는 학교와 바다 사이 소나무 모래밭. 전교생이 34명인 소록도 분교 어린이에게 누가 이렇게 찾아와서 연극을 보여준 적이 있을까.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이 오밀조밀 둘러앉은 뒤로 선생님 세 분,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유모차를 끌고 와 앉았다.

연극 ‘아리랑’(연출:표수훈)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숨소리도 죽여가며 몰입했다. 배우들은 소나무 뒤 여기저기에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고 퇴장하며, 열린 무대의 장점을 십분 살려 열연을 했다. 가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장면에서는 아이들도 ‘액션!’을 같이 외치고 탄성으로 하나가 됐지만, 좀더 적극적인 아리랑 춤에는 얼른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소박한 모습이 더 좋았다. 배우들이 한결같이 뜨겁게 몸을 던져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보여줄 때, 아이들에겐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살풋 스쳤다. 그러나 아이들의 감동어린 얼굴에서 ‘아리랑’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먼 유형의 섬 소록도에, 나직하지만 절절하게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멀리서 파도가 흰 손을 흔들면서 줄지어 달려왔다. 목이 멘 듯 솔방울이 툭 떨어지고, 바람이 내내 푸르른 박수를 쳤다. 이 모두가 한편 삶이라는, 꿈이라는 감명 깊은 연극이었다.

풍경과 하나가 되어 펼친 바닷가 분교 모래밭의 연극.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한 만났다. 그 꿈은 제 나름의 길을 새로이 열어가리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은 세상 무엇을 주는 것보다 값지다. 우리 모두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말기를!그래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또 꿈꾸어 가기를!

/정수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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