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꾼들

KBS1-TV의 인기사극드라마 ‘태조 왕건’에는 이른바 후삼국시대의 영웅 호걸들의 책사(策士)들이 등장한다. 마진국의 궁예에게는 종간과 아지태라는 책사가 있고 후백제의 견훤에게는 최승우와 능환이라는 책사가 있다. 사료에는 이들 책사의 기록이 거의 없다. 아지태만 ‘궁예에 붙어 정치를 혼란시켜 갈등을 촉발한 인물’이란 언급이 있을 뿐 최승우와 능환은 이름만 나온다.

자칭 미륵불의 현신이라는 궁예도 책사 아지태에 의해 탐욕과 야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간악한 책사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왕(궁예)의 약점과 욕망을 자극하며 백성의 신음소리를 막는다. 궁예의 원래 책사이자 심복인 종간은 송악에서 철원으로 무리하게 도읍을 옮기는데 앞장선 아지태를 제거하려고 노심초사하면서 송악의 맹주 왕건을 지지하는 호족들을 멸문지화시키려고 계책을 꾸민다. 아지태와 종간의 생사를 건 갈등으로 천하의 구세주라는 궁예는 폭군으로 떨어지고 왕국마저 무너진다.

후백제의 견훤도 능환과 최승우란 두 책사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세력다툼과 판단력이 뛰어난 최승우에 비해 충동적이고 과시적인 능환이 견훤의 장남 신검과 함께 반역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왕건은 처음에는 궁예가 가장 신뢰하는 대장군이었으나 궁예의 책사 종간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가 나중에 책사 최응 등의 뛰어난 지략과 역량을 받아들여 고려의 태조가 된다.

TV 드라마는 책사들을 상상력으로 살려내 스릴과 재미를 고조시키고 있지만 능환이 견훤부자의 갈등을 촉발시킨다는 것도 가설이다. 예로부터 최측근으로서의 간악한 책사는 충신을 가로막고 왕의 혜안을 흐리게 한다. 책사들의 갈등과 왕의 잘못된 선택은 파멸을 자초한다. 영웅(왕)의 파멸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인의 장막’도 큰 원인이다.

책사가 무엇인가. 모사(謀士)이다. 모사가 누구인가. 바로 참모다. 오늘날 우리 정치판에 올바른 참모들이 몇명이나 있는가. 매사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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