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다언(毋多言)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은 정치가들만이 아니다. 공직자들도 거짓말을 곧잘 한다. 고위층일수록 더욱 심하다. 거짓말을 한번도 안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거짓말과 공약을 밥먹 듯 한다. 그래도 이제 만성이 되었는지 그저 또 속았구나하면 어느정도 분통이 가라 앉는다. 그런데 공직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공직자의 거짓말이나 헛소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금융권 구조조정을 하면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대한 감자(減資)조치가 결정되자, 지난 1998년 “감자는 없을 것”이라던 재정경제부장관의 약속을 믿고 투자했던 국민은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 되었다.

이근영(李瑾榮) 금감위 위원장은 지난 9월 현대건설 사태 때 “4대 그룹 계열사도 출자전환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으나 이튿날 진념(陣稔) 재경부장관이 “4대 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의 출자전환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정반대로 발언했었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제대로 한다고 했다. 거짓말도 앞뒤가 맞아야 속아 넘어가는데 도대체 철없는 아이들의 말씨름 같아 한심하다. 국민의 정부 집권이후 수많은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없자 예전에는 별생각없이 정부정책을 따르던 국민이 이제는 정부를 믿지 못하는 딱한 형편이 되었다. 농민들이 “정부에서 권장한 농작물과 반대되는 것을 심어야 이익이 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비극이다.

공직자의 몸가짐 가운데 말조심에 대한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직자가 한마디 말 때문에 ‘설화’사건에 연루돼 불명예 사퇴하거나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야기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일찍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 율기육조(律己六條)에서 공직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과 품행을 ‘무다언(毋多言)’이라고 적었다.

공직자는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목민심서 제5편에 “어중지도(馭衆之道)는 위신이이(威信而已)”라는 구절이 있다. 대중을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믿음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공무원들은 그러하지가 못해 아닌게 아니라 큰일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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