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수현씨(27)의 죽음은 무엇일까. ‘일본 열도를 울린 의인’이란 말을 듣는다. 고려대 무역학과를 휴학하고 일본에 건너가 유학중이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에서 학교장으로 지난 29일 영결식을 치렀다. 영결식장은 모리 일본총리등 각료를 비롯한 각계인사 1천여명이 조문하고 이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추모의 글이 2천100여건이나 올라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일본 언론은 이씨가 지난 26일 도쿄시내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살려내고 자신은 숨진날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던진 한국유학생의 죽음을 헛되이 말자’고 했다. ‘한·일 우호증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씨의 의로운 죽음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을 새롭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 의해 희생당한 이씨의 4대에 걸친 사연은 그의 죽음에 애도의 정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살신성인의 의로운 죽음은 우리 주변에서도 더러 있는 일이다. 입장을 바꾸어 일본인 한국유학생이 서울시내 전철역에서 위험에 처한 한국인을 구하고 자신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런 경우가 이수현씨에 앞에 서울에서 먼저 일어났다면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의인, 이씨에 대한 일본열도의 후한 조의는 어디까지나 인간정신의 발현이다. 일본 사회 역시 점차 삭막해지는 결핍된 인간정신을 한 이국인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역땅에서 목숨을 던진 젊은 의인은 우리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하여 일본의 국익을 한국의 국익으로 양보하는 일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다.
부산에 사는 이씨의 여자친구는 ‘수현아! 넌 지워지지 않아. 항상 널 위해 노래부를게. 천국에서 들으렴…’하고는 흐느꼈다고 전한다. 생떼같은 아들을 놓친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일본으로 달려간 이씨부모는 한줌 재로 변한 유해를 저미는 가슴에 품고 귀국했다. 다시 살아 돌아올수만 있다면 ‘한국인의 긍지’, ‘일본인의 후의’를 다 반납해도 좋다. 그래서 다시 살아날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사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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