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지난해 말부터 크게 유행하던 홍역(紅疫)이 올해에도 여전히 번지고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 비상이 걸렸다. 주로 어린이들이 앓는 홍역은 처음에는 발열·기침·콧물·눈곱이 끼다가 얼굴·목·가슴·몸통의 순서로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환자 1천명 중 1명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역은 40여년전만 해도 많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이었다.

전염병으로 인한 비극은 동서고금이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도 참혹했다. 조선시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약 200년간 전염병이 무려 79차례나 휘몰아쳤고 그 결과 어떤 해에는 인구의 7.8%인 50만명 이상이 죽기도 했다. 전염병이 ‘오랑캐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그 전염병을 역병(疫病) 또는 염병(染病)이라고도 했으며 반 우리말로는 ‘돌림병(病)’이라고도 했다. 이 돌림병이 한번 ‘돌고’ 지나가면 삼천리 강산이 온통 죽음의 강토로 변하곤 했다. 시체가 도처에 널리지만 행여 옮을까 치우기도 겁이 나 아예 정든 고향을 등지고 멀리 타향으로 떠났다.

당시 전염병은 콜레라나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는데 그 중 홍역은 특히 무서웠다. 누구나 한 번은 걸린다고 하는 이 홍역은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갔다. 조선 숙종 33년(1694)의 경우, 초봄에 평안도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1만여명이 죽었고 그해 가을에는 전국적으로 만연돼 죽은 자가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아 ‘동네 골목에 어린아이가 드물었고, 한 집안이 몰수한 경우도 부지기수’에 이르렀다.

요행히 홍역에서 살아 남아도 사후(事後)에 겪는 고통은 죽은 자나 별반 다름없었다. 역병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므로 기근이 그림자처럼 따랐고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벗겨지고 풀뿌리조차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초근목피로 연명한 것이다. 그래서 ‘홍역을 치렀다’는 표현은 비참의 극을 형용하는 말이 되었다.

최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정부가 4월말까지 전국의 모든 초등 1년생에서 고등 1년생 600여만명을 대상으로 일시에 무료로 홍역 백신을 접종하는 캐치업(catch-up)을 한다고 발표했다. 예방은 하지 않고 꼭 큰 일이 터져야만 허둥지둥대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홍역은 ‘평생에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는 전염병이다. 자녀는 국가가 키워주는 게 아니다. 먼저 부모들이 미리 미리 예방해주는 게 도리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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