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한국 페미니즘(feminism)사에서 1978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해 이화여자대학교에 ‘여성학’ 강좌가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여성운동가들이 여기서 배출됐다. 지난달 말 초대 ‘여성부’ 수장이 된 한명숙장관도 그렇다.

1980∼1990년대에 한국 페미니즘은 분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여성학 외에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속속 페미니즘 연구에 가세했으며, 그만큼 운동의 폭도 넓어졌다. 노동과 임금, 심지어 남북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졌다.

페미니즘이 공론화되어서인지 오늘날 여성들의 활동은 매우 괄목할만 하다. 정계·학계·교육계·예술계·체육계 등 각 분야에서의 활약상이 가히 눈부시다. 한국일보 사장이 된 장명수씨같은 언론인이 있는가 하면 국회의원으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들도 많다.

골프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박세리·박지은·김미현 선수같은 여성이 있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여성 앵커가 더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문단에 데뷔하는 신인들도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아졌다. 수원지방검찰청에 이영주·박은정·백혜련·전미화 검사 등 4명의 법조인이 포진하고 있는 사실도 여성시대를 실감케 한다.

이렇게 여성들이 각계 각층에 진출, 맹활약하고 있어 오히려 남성들이 주눅이 들 지경이라는 엄살 비슷한 푸념도 들려온다. 정부에 ‘남성부’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 ‘학대받는 남성 모임’이라는 희한한 단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여성의 사회상·정치상·법률상의 권리 확장과 여성해방·여권확장·남녀동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본궤도에 들어 선 것 같다.

여성부가 출범한 올해는 한국 페미니즘사에 매우 뜻깊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여성들이 여성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저변에는 남녀불평등이 엄존해 있기 때문이다. 여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가 있는데 굳이 여성부를 별도로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음을 생각할 때 앞으로 여성정책 시행 과정에서 있을 많은

난관이 걱정된다. 그래서 남성은 페미니즘이 ‘남성에 대한 거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성이 잘 사는 사회가 바로 남성이 잘 사는 사회이다.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