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칸에서

서울시청앞 역이던가, 30대 후반의 주부가 여남은살 되는 딸아이하고 수원행 전철을 탔다. 공교롭게 서울역에서 탄 비슷한 또래의 주부가 우연히 만난 친구인듯 싶었다. 두 주부는 손잡이를 잡고 선채 그간의 소식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정겹게 나눴다. 딸아이가 이리저리 사람들 틈에 시달리는 것을 딱하게 여긴 앞 좌석의 승객이 비좁긴 하나 틈을 내어 앉도록 권했다. 그 아이는 수줍음을 타며 사양하고 아이 어머니는 그래도 고맙다는 목례를 고개숙여 해보였다. 좌석을 양보하는 일도 좀처럼 없고 또 양보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기가 예사인터에 아이가 앉지도 않은 ‘틈새좌석’ 권유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무척 대견해 보였다.

친구인듯 하는 주부가 지갑을 열더니 만원짜리 두장을 성큼 꺼내어 친구 딸아이에게 주려하자 “아이, 됐어” “왜그래…”하고 승강이가 한참 벌어졌다. 결과는 마음만 받고 돈은 돌려주는 것으로 끝났다. 안양역에 이르러 좌석하나가 비어 딸아이가 앉았고 금정역에선가는 친구가 내리고 좌석이 또 비게 되어 모녀가 비로소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있었다. 딸아이가 과자를 꺼내자 그 어머니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옆좌석승객은 뭘까하고 조금 궁금해했다.

아! 그것은 비닐봉지였다. 봉지엔 벌써 휴지조각이며 과자봉지 부스러기가 들어 있었다. 이미 길거리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도 가끔은 버리곤했던 승객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은 버려도 나는 안버린다는 그 주부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무척 놀라웠다. 아이 어머니는 화서역에 이르도록 딸이 과자를 먹으면서 버리는 부스러기며 종이를 담도록 아이앞에 비닐봉지를 벌인채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비닐봉지를 다시 둘둘말아 핸드백속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여행중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담아 집에 가져가 버리는 무명의 그 주부는 정말 훌륭한 시민이다. 그만하면 아이에 대한 가정교육도 가히 모범적이다.

이윽고 수원역에 닿아 쏟아져 나온 승객들틈에 섞여 모녀는 사라졌지만 그런 사람이 같은 지역사회에 산다는 생각이 자랑스러웠다. 전철칸에서 굶은 담배를 플랫폼에서부터 피워댄 지지대子는 차마 다 피운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릴수가 없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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