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峨山) 정주영 전현대그룹명예회장의 부음에 외국의 언론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한국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큰 손실’이라며 해설 기사와 함께 타계 소식을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늘 새로운 도전으로 경제기적을 이룬 주인공’이었다고 평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오늘에 이른 입지담을 아울러 보도했다.
생전에 거처한 방안의 책상 모서리가 닳고 닳아도 그대로 썼을만큼 생각보다 검소했던 청운동자택에 차려진 빈소엔 연일 수많은 조문객 행렬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사회 또한 대체로 애도의 정서가 깔렸다.
고인은 ‘경제의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체험적 보릿고개의 빈곤추방을 시작으로 기간산업의 고도 성장을 이끌어낸 국민경제의 거목이다. 실제로 60년대의 정주영기업인은 박정희대통령의 경제동지였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일신의 명운을 걸고 박대통령에게 결행의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근래에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것도 그였다. 역사적 전기의 남북정상회담을 가능케했던 것은 수차 평양을 왕래하며 주도한 대북사업에 힘입은바가 크다. 정주영씨의 타계는 남북관계의 변수로 등장하고 있긴하나 가능한 한 유지를 살리는 것이 민족의 이익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선출마를 두고 흠을 말하긴 한다. 국민당을 조직, 15대선거에 나선것은 경제인으로 외도임은 틀림 없지만 그로써도 평소 정치권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었던 한(恨) 풀이로 해석하면 못할것도 아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런것처럼 흠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란많은 한 생애의 관을 닫는 마당에선 부정적 측면보단 긍정적 대의가 더 우선해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인생은 유한하여 찬연했던 ‘불도저의 신화’는 꺼졌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시작해 어지간히 열심히 산 불굴의 도전의식은 비록 시대가 달라도 후세의 교훈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일이면 역시 빈몸으로 유택에 묻히지만 그가 남긴 큰 족적은 길이 남을 것이다.
현대그룹은 어차피 계열분리가 불가피하게 돼있다. 경영2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행여 더 이상의 집안 싸움으로 고인에게 누(累)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향년 여든여섯이면 아쉽긴 하나 천수를 누렸다 할수가 있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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