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눈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부처도 돼지도 아닌 인간의 눈엔 인간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은 멀쩡한데 눈에 색깔종이를 끼고 세상이 검다 노랗다 하는것은 바로 보는 것이 아니다. 색깔종이를 눈에서 뗀 오성(悟性)의 눈으로 볼때 비로소 인성(人性)의 시각을 회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인간은 힘이 있으면 교만하여 힘을 욕보이고, 공이 있으면 티를내어 공을 더럽히곤 한다. 이 역시 인성이 척박한 탓이다. 자신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명예욕에 속하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이만을 탐하고 과시하려들면 인간사회는 어쩔수 없이 어지러워진다.
행세깨나 하는 이름있는 이들도 더러는 이러는판에 이름없는 안방 살림꾼들이 틈을내어 사회봉사의 한 모서리를 맡고있는 선행은 잔잔한 감동을 일렁거린다.
지난 26일자 본지 13면에 보도된 한길봉사회 한마음모임회 자원봉사자들은 신문에 난것을 기뻐하기보단 오히려 알려진것이 거북해 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말을 하기 위해 오늘의 말을 꺼낸것은 아니다. 그같은 자원봉사 주부들에 대해 가족들의 성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신선하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어머니가 노인분들에 대한 경로 무료급식에 참여하는 사회봉사를 친구들에게 긍지삼아 얘기하고 남편들은 서둘러 나가 봉사하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는것은 역시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것을 볼수가 있다. 아마 그런 주부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사귀는 친구들도 흔히 말하는 문제아는 있을수 없을 것이며, 그 남편들 또한 근면 성실한 사회인일 것이다.
이해타산이 판치는 세태에서 이토록 무작정 남모른 인간애를 꽃피우는 무명 서민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져 그래도 사회는 살만하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하긴, 한길봉사회 한마음모임회 자원봉사 활동은 사례의 하나다. 이밖에도 숱한 자원봉사나 선행이 눈에 드러나지 않은 생명의 한줄기 지하수처럼, 사회를 살맛나게 받쳐주고 있다.
굳이 이름을 누구라고 밝혀도 잘 알수없는 서민층의 이같은 무명봉사는 세상이 어떻든 생색낼줄 모르는 인간애를 지녀 우리들 가슴에 더욱 뜨겁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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