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성적

정치학자들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성적을 대개 이렇게 평가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국정을 운영했다. 집권 말기인 1978년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긴 했지만 대체로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량위주의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물가상승률이 20∼30%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발전을 위한 기반조성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9대 국회의 경우 정부제출 법률안은 478건이었고 이중 460건이 가결돼 96%의 통과율을 보였다. 부결된 법률안은 하나도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취임해 경제발전과 물가안정을 약속했고 집권 3년만에 12.2%라는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과 임기 내내 5% 안팎의 물가안정을 이뤘다. 정치발전 풍토조성 면은 낙제점이다. 임기 중 국회의 정부제출 법률안은 모두 455건으로 이 중 413건이 가결돼 90.8%의 높은 통과율을 보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경제발전보다 물가안정을 강조했으나 물가는 한때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는 등 안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소득분배 구조는 개선됐다. 정치발전 풍토는 전환점을 얻었다. 13대 국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제출 법률안 중 부결된 법률안이 나왔다. 정부 제출 법률안은 86.3%의 통과율로 이전보다 낮아졌다. 북방외교는 성공적이었다. 수교국가가 130개국에서 165개국으로 증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약속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개혁은 약속한 대로 어느 정도 실효를 거뒀다. 지방자치제도의 전면적 실시는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넓혔다.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현금통화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아 ‘돈 적게 드는 선거의 실시’가 이뤄졌다.

1998년 2월25일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 오늘은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 발전시키려는 정부가 마침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 ”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용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열명 가까이 나댈만큼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벌써 후반기에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일들이 과연 이행될 수 있을는지 아슬아슬하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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