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예술

淸 河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소년시절엔 몸이 튼튼했기 때문에 장군이 되는 것이 장래의 꿈 이었다.그러나 43세에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후 10여년이 지나서는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다. 큰 부호가 되기까지 록펠러에겐 쉬는 날도 친구도 없었다. 오직 성공과 소유욕에 대한 집념만 있었다. 하지만 차츰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불안과 공포때문에 경호원을 채용했다.더욱 불행한 일은 부호인 록펠러가 병으로 인해 식사로는 비스켓 몇 조각과 물 몇 모금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록펠러는 여러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조언을 들었고 마지막으로 어느 목사를 찾아가 상담하던 중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목사는 “그동안 돈 버느라고 잠 못자고 피곤하며, 숱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졌으니 이제부터 남에게 베풀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 보다 얼마나 가치있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그 목사는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요 돈을 바로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록펠러는 목사의 조언에 생각과 마음이 달라졌다. 보육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대학과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병원도 설립했다. 많은 자선단체를 설립, 봉사하는 동안 섬기며 베푸는 즐거움이 돈 버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록펠러의 삶은 점차 기쁨이 넘치는 생활로 변했다. 5년 혹은 10년 안에 생을 끝낼 것이라는 주치의들의 수명 진단은 사라지고 점점 식욕이 좋아졌다. 잠도 잘 오게 되었으며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 록펠러는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얼마 전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73세의 박일분 할머니가 5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상주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8·15 전 돈 벌러 일본으로 간 남편은 소식이 끊기고 두 아들은 6·25 때 인민군의 폭격으로 죽었다. 날품팔이·노점상·행상 등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학교에도 못 가본 채 저 세상으로 떠난 아들 생각이 나서 장학금으로 맡겼다 ”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따금 듣는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록펠러의 자선사업도 그렇지만 박일분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의 선행은 더욱 아름답다. 그런데 한국의 부호 ·재벌들은 못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제 살길만 찾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불행하고 가난했던 박일분 할머니의 돈 쓰는 만년 예술 작품이 참으로 훌륭하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