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예전에는 ‘ 철도국에 다닌다 ’하면 모두 부러워했다. 철도국 직원들은 나라에서 월급을 매달 꼬박 꼬박 준다고 딸 둔 집에서는 사윗감으로 모두 좋아했다. 그 길다란 기차도 철도국 직원 가족들은 공짜로 타고 다닌다고 아이들은 자랑하고 다녔다. 수학여행 같은 것 외에는 기차 타 볼 일이 없는 아이들은 기차가 달리는 철로 옆길에서 승객들에게 두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마을 언덕에 올라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철도 기관사 ’는 파일럿처럼 무척 멋져 보였다. 그래서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1899년 9월 18일 일본이 경인철도주식회사를 설립,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33.2㎞의 철도를 완공한 이래 광복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일제의 식민지정책 수행을 위한 필요에서 이루어졌다. 8·15 광복과 정부수립 이후 철도는 전면 국유화되어 그 운영과 부대사업에 관한 업무를 철도청이 관장하게 되었고 철도원은 철도청에 소속된 공무원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은 철도원 요직에 종사할 기회가 부여되지 못했다. 1905년 5월 철도이원양성소가 생겨 1919년 경성철도학교로 개칭되었고, 1967년 이 학교가 철도고등학교를 거쳐 1979년 국립 철도전문대학으로 개편, 승격되면서 철도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해왔다. 졸업후 취직이 잘 돼 수재들이 특히 선호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철도원의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철도현장에서 근무하는 하위직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 민영화에 대비해 인력감축을 시작한 1996년부터 올 6월까지 무려 7천739명이 감축된 것이다. 터무니없는 인력 감원으로 살인적인 노동이 계속돼 과로사나 작업중 사고로 순직하는 철도원이 늘어 “보선원의 주검으로 선로를 깐다”는 말까지 생겨났다.역무원들의 근무여건도 과로사가 늘어나는등 비슷하다. 철도노조의 이같은 주장을 철도청은 시인하지 않는다. ‘북한∼시베리아를 잇는 21세기 철도 르네상스를 구축하겠다 ’고 정부가 공언하는 사이에 고달픈 하위직 철도원은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철도원을 부러워하던 시절은 언제 다시 오나.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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