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的자금화’ 누구 책임인가?

이미 논란이 된 공적자금의 부실책임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한다. 외환위기로 금모으기가 범국민적으로 한창일 때 부실기업주들은 5천200억원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외국 카지노에서 흥청망청으로 외화를 낭비하고, 부실금융기관 등 공적자금 지원업체 임직원이 은닉한 7조원대의 부당 보유재산이 적발되는 등 감사원이 밝혀낸 이 밖의 허다한

비리는 공적자금 하부구조에 의한 것이다.

이에비해 파산법인 234곳에 연 540억원을 펑펑 내주고 비보호 신탁상품에 4조원을 물어주는 등 정부 잘못으로 안써도 될 12조원을 과다지출한 것은 공적자금 중간구조의 잘못이다. 임직원에 5천200억원을 무이자 대출로 선심쓰고 직원명의 도용으로 수십억원을 대출 횡령케 했는가 하면, 부실채권을 헐값으로 거래해 수천억원을 손실내는 등 이밖의 많은 관리결함 또한 공적자금 중간구조의 잘못이다.

그러나 투입적기, 투입규모의 판단착오 그리고 부실규모 파악 미흡으로 혼란을 가중한 것은 공적자금 상층구조의 잘못이다. 이래가지고 돌려받지 못하게 된 돈이 150조 가운데 자그만치 30조원이고, 손실액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실정이다. 이미 지출된 공적자금의 재정 금리부담만 해도 연간 수조원에 이르러 국민의 세금으로 갚고 있다. 이도 모잘라 원금을 떼이면 또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재정마저 거덜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부실업체 대주주등 67명을 검찰에 고발, 재산환수 수사를 촉구하고 일부는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만으로 공적자금의 비효율이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산더미같은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감시는 소홀했다. 공적자금의 관리소홀의 총체적 책임을 중·하층구조에만 물을 일이 아니다. 근원적 책임은 정책진단의 오류를 저지른 상층구조에 있다. 항간에서는 상층구조에서부터 공적(公的) 자금을 공적(空的) 자금화 한 연유로 인해 하부구조에서 공적자금을 먼저 본 사람이 임자가 되는 사자금화로 무주공산화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에서도 은행등 부실기업 퇴출에 고려된 정치적 의혹에 대한 규명이 빠져 이를 더욱 짙게하고 있다. 또 공적자금 부실문책 요구 역시 중·하층구조에만 쏠린 것도 의문이다.

상층구조의 책임은 진념 재경부장관과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 전 정권의 강경식 경제기획원장관이 환란의 주무책임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진념 재경부장관은 공적자금 부실의 주무 책임자다. 그런데도 도데체가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다. 대통령도 유감표명 한마디가 없다. 주무장관이란 사람은 기껏 한다는 소리가 국채로 떼우겠다는 무책임한 소리뿐이다. 이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대통령의 책임있는 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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