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시대의 송사는 물증보다 자백 위주였다. 민사에서도 그랬지만 형사에서는 더했다. 피의자에 대한 신문이 처음부터 “네죄를 네가 알렸다!”로 시작되곤 하였다. “모른다”고 하면 곤장을 치다가 그래도 부족(부인) 하면 주리를 틀었다. 역모같은 국사범은 불에 달군 인두로 지졌다. 그리하여 참다못한 피의자는 진실을 자백하기도 하지만 무고한 피의자는
추국관이 묻는대로 시인하는 거짓 자백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문당하다가 죽기도 했다.
당시의 조서를 일컫은 공초(拱招)란 말의 원의는 범죄 사실을 진술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유죄인정이 자백위주 였는가를 알 수 있다. 생각하면 참으로 우둔한 형사소추의 절차 진행이다.
피고인(피의자)에게 불리한 자백만으로는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사소송 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은 더 더욱 유죄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수뢰사건엔 으례 부인부터 하고 나서는 관행이 일고 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고위직 공무원들의 형사문제에 부인했던 당초의 말은 진실과 다르게 혐의가 확정되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수없이 보아왔는데도 그러하다.
왕조시대 같으면 곤장을 치고 주리를 틀어야할 비리를 두고 자백의 불이익 배제를 빌미삼아 부인하고 나서는 공직자 비리를 흔히 본다. 신광옥 법무부 차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 진승현에게 1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검찰수사 혐의가 포착됐다. 그의 골프가방에 현찰을 직접 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역시 신차관의 강력한 부인이다. “만난적도 없다”고 부정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글쎄, 일단은 부정했던 지난 사례에 비추어 신차관의 혐의부인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같으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현직 법무부차관의 혐의를 덮어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지검은 이에대한 수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직 검찰 내부의 비리를 묵과하지 않는 검찰 수사팀이 대견하다고 믿어 격려를 보낸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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