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보신탕의 본 고장에 위치한 대광리역
여름날 화려했던 온갖 꽃들이 다 지고 마지막 남은 노란 은행잎마져 떨어져 화단 장식돌로 사용된 구멍이 쑹쑹 뚫린 화산돌 틈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초겨울날의 대광리역사는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보인다. 대광리역은 경원선 최종단역인 신탄리역 바로 전역으로 연천군 신서면 도신1리에 위치한 작은 역이다. 원래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 지역으로 대광산(大光山, 541m)밑이 되므로 대광골 또는 대광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웅기리, 신탄리를 통폐합하여 대광리라하여 1953년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일설에는 고려 목종때 연천 보개산 심원사 대종불사에 장님 이덕기와 앉은뱅이 박춘식이 서로 눈과 다리가 되어 전국을 문전구걸하여 모은 돈을 시주하기 위해서 보개산 산마루에 올랐을 때, 갑자기 눈앞에 부처님이 보이자 앉은뱅이 박춘식이 뛰어나가려는 듯 몸부림을 쳐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쑥 펴졌고, 장님 이덕기가 ‘부처님 어디 있어요’하며 눈을 떳다고 한다. 그후 이 두사람의 선행이 영험이 있어 ‘눈을 뜨고 다리를 고치게 하였다’ 하여 ‘큰 빛을 보았다’는 뜻으로 큰대(大), 빛광(光)을 쓰게 되었다 한다.
대광리역은 1912년 10월 2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후 8.15해방과 동시에 이북에 배속되었다가 1951년 9.28 수복으로 탈환되어 동년 12월 31일 군수물자 수송을 개시한 이래 1954년부터 여객을 취급했다. ―자형 부럭조 단층기와 역사는 1958년 12월 26일에 준공되었다. 대광리역에는 이응식(파주, 40세)역장을 비롯하여 부역장 정광연(익산, 30세) 이외에 4명의 역무원이 있어 3명씩 24시간 맞 교대한다. 역주변에는 역의 미관증진책으로 역무원들이 만든 조류, 토끼, 오골계 사육장 및 원두막이 있다. 승객들은 봄철 산나물 캐러오는 사람, 아침저녁 전곡읍으로 통학하는 학생들, 의정부쪽에서 신서면으로 역 출퇴근 하는 공무원들, 군면회객, 개고기 먹으러 오는 사람과 온천객들이 주요 손님이다.
대광리역 광장에는 대광유황천 셔틀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있으며, 차로 약 5분거리의 대광산 계곡에 유황천이 위치하고 있다. 남한내 최북단 청정지역에 개발된 대광유황천은 당뇨병, 류머티즘성 질환에 효험이 있고 경관이 뛰어난 고대산 등산로와 연결되어 등산과 온천욕을 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대광리역 주변에는 5사단의 2136 신병교육대, 5인의병총 등이 있다. 역대합실에는 한국 SGI불교회에서 기증한 500여권의 책과 정시운행, 매표 대기시간 3분, 장애인 도우미제 등을 기록한 고객서비스 헌장, 자율신문 판매대, 대국화 화분 20여개가 놓여 있어 정겨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의정부역-신탄리역을 왕복하는 통일호 열차가 하루에 상행 17번, 하행 17번 정차한다. 어쩌다 노란색의 1량짜리 궤도검측차가 무정차하며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연천역이 망실된 경우에는 임시로 화물을 취급하나 평시에는 여객만 취급한다. 한국철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신서면민과 철도이용객을 위한 큰빛(大光)음악회가 1999년 10월 23일 대광리역 광장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해마다 열리고 있다.
역주위에 신서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협 등이 위치하고 있어 시골역치고 제법 화려한 편이다. 이 대광리역에 주말이면 노년층을 중심으로 수십명씩 떼를 지어 나타나는 인간 무리들을 흔히 목격한다. 이들을 따라가면 영락없이 보신탕 집에 들어가고 극히 일부만이 대광온천에 간다. 대광리역 주변은 한국 최고의 개고기 맛을 내는 보신탕 집들이 즐비하여 최근에 수도권일대에서 개스트로노머(gastronomer;미식가)들과 노인들의 개고기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개고기 무침이 전문이다. 평일 승차객이 각각 400∼500명에 불과한 대광리역에 여름 복날 주말에는 보신탕을 먹으러 서울, 인천, 연천, 의정부, 동두천 등지의 노인회와 옛 철도직원들을 중심으로 1,000여명씩 몰려온다. 대광리역 주변에 보신탕이 성업하게 된 이유는 첫째는 개사료를 먹이지 않고 주변에 많은 군부대의 음식물쓰레기인 짬밥(?)을 먹이기에, 개고기가 영양가가 많으면서도 담백하고 부드럽고 쫄깃쫄깃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동네 인심이 푸근해서 2인분시키면 4인분 정도의 많은 양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는 주변의 산세가 좋아 공기가 맑고 민가가 적어 개사육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개의 기원을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 당나라 문헌에 제주에서 개를 사육하여 옷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보아 아주 옛날부터 사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개가죽으로 장구를, 꼬리로 비를, 털가죽으로 방한용 외투와 모자를 만들고 고기는 식용으로 이용하였다. 개고기는 구장(狗醬), 구탕(狗湯), 지양탕(地羊湯),개장, 보신탕,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불린다. 개고리를 초벌 삶아 된장을 푼 국물을 붓고 끓이면서 마늘, 생강, 파,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을 하여 푹 곤다. 고기가 흐물흐물하게 익었을 때 건져서 뼈를 발라내고, 고기를 적당히 찢어서 일부는 국에 넣고 일부는 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려 국물 위에 얹거나 마른 고기로 먹는다. 삼복에 더위를 이기고 보신하며 병을 앓고 난 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황구를 가장 상등품으로 친다. 레스리 C.스미스가 ‘개에 관한 진실’이란 글에서 ‘심오한 철학은 고양이에게서 찾고 일상의 지혜는 개에게서 구하라’라고 말했듯이 개는 우리 인간에게 마약 탐지, 맹인 인도, 사냥, 투견, 번견(番犬) 등으로 널리 이용되는 유익한 동물로 ‘항상 궂은 일에 대비 하라’라는 교훈을 준다. 그래서 개는 먹을 유익한 동물의 일부를 음침한 곳에 숨겨놓는 버릇이 있다. 개는 청각과 후각이 뛰어나다. 후각은 사람에 비해 10만에서 10억배, 청각은 4배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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