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處仁城)은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산43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축산성으로 경기도 지방기념물 제44호다.1970년대 후반, 일부를 복원하여 둘레가 350m쯤 된다. 처인성이 있는 남사면은 일찍부터 육로의 요충지였다. 처인성 전투는 그래서 더 유명한 ‘대첩’으로 전해 온다.
1232년(고종 19) 고려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천도(江華遷都)를 단행하였다.
그해 몽골군의 장수 살리타이(撒禮塔)가 고려의 북계(北界·평양도지방)에 침입하여 서경의 반적(叛賊) 홍복원(洪福源)과 합세하여 고려를 위협하였다. 살리타이는 고려가 해도(海島)인 강화로 도읍을 옮긴 것을 감히 꾸짖고,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살리타이는 북계에서 남쪽으로 개경을 거쳐 한양산성을 함락하고 수주(水州·지금의 수원)에 예속되었던 처인부곡(處仁部曲)의 처인성을 침공하였다.
이때 처인성에 있던 백현원(白峴院)의 승려 김윤후(金允侯)가 성내의 민중들과 함께 항전, 살리타이를 활로 쏴 죽였다. 장수를 잃은 몽골군은 전의를 상실하여 부장 철가(鐵歌)의 인솔로 곧 북으로 퇴각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몽골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남쪽지방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게 되었다. 처인성 전투로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되었고, 김윤후는 대장군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하여 섭랑장(攝郞將)이 되었다. 또 임진왜란 때는 처인성에 주둔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수원의 독산성(禿山城)에 집결한 관군의 대부대와 처인성 주민들이 협공, 처인성을 탈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항몽 전승지인 처인성의 전투가 ‘아, 처인성’이라는 연극으로 지난 17일 용인문예회관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았다. 용인지역 문화예술인들은‘아, 처인성’을 용인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매년 공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각 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은 민족사를 재조명하는 뜻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아, 처인성’은 경기일보 문화부 차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숙현씨가 희곡을 쓴 역작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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