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말씀’받아쓰기 금지를 지시한 것은 많이 늦긴 했으나 잘한 일이다. 국무위원들이 간간히 메모하는 것은 또 몰라도 대통령의 말 하나하나를 일일이 깨알처럼 받아쓰는 국무회의가 돼서는 헌법기구의 소임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선생님과 학생 같았던 ‘받아쓰기 국무회의’는 냉소와 비판의 대상이 됐으나 그러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불경죄를 저지르는 듯한 강박관념에 쫓기어 관행화된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의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말만 있을뿐 본연의 소임인 토의는 불가능하며 지금까지의 국무회의가 그러하였다.
국무회의는 단순한 장관회의가 아니다. 정부의 중요정책을 심의하는 합의체 기구다. 헌법이 89조1항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을 비롯, 16항의 검찰총장, 각군 참모총장, 국립대 총장, 대사, 국영기업체의 관리자 임명 등에 이르는 16개 심의사항을 예시한 것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말만 들으라는 게 아니다. 심의는 어휘 그대로 토의가 전제된다. 정부조직법에 의거,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무회의 규정’에서 의사 및 의결 정족수를 조문화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갖가지 시책이 부처간에 상충되거나 사전 협의가 미진하는 등 시책 누수가 심했던 게 다 그간의 국무회의가 활성화되지 못했던데 연유한다. 먼저 국무위원에 임용되고 특정 장관직에 보하는 각료 임명장은 내각 구성원의 소임을 부여하는 것인데도 이와는 달리 부처(장관) 할거주의가 팽대한 것 역시 국무회의가 활성화 하지 못했던 탓이다. 국무회의는 의장(대통령)이 열고 싶으면 열고 말고 싶으면 마는게 아니다. 정례국무회의가 있고 임시국무회의가 있어 국정 전반을 부단히 검토, 점검, 확인하는 국정운영의 행정부 최고 기구다. 의안도 의결사항과 보고사항으로 구분, 개회전에 제출돼야 한다.
이러한 국무회의가 제기능을 발휘 못하고 파행 운영한 것은 물론 이 정부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시대부터 답습돼온 일종의 고질이다. 이번에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받아쓰기 금지를 지시한 것을 계기로 법규대로 운영하는 국무회의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것은 다음 정부에서도 계승할 수 있는 관행타파의 모럴을 기대하기 위해서다. 국무회의의 국무회의 다운 운영은 국정운영에 활기를 불어넣어 대통령의 임기 마무리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국무회의 활성화는 국무위원들이 소관 부처에 국한하지 않는 국정 전반에 책임을 함께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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