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

중국 송대(宋代)에서 재상까지 지낸 명신 여공저(呂公著·1018∼1089)는 학문과 식견이 탁월하여 황제의 교육도 담당했다. 여공저가 ‘논어’를 강의하다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 그 또한 어찌 군자라 하겠느냐’라는 대목에서 황제에게 아뢰었다.

“아랫사람으로서 웃사람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자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편 웃사람 또한 아랫사람으로부터 충분히 이해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옛날의 군주는 정령(政令)이 엄수되지 않고 인심장악도 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 덕을 닦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여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성왕(聖王) 순(舜)이 그렇고, 주(周)의 문왕(文王) 또한 그렇습니다!”

송대는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이며, 오늘날의 사회와 공통되는 점이 적지 않다고 전한다. 여공저의 말은 그래서 더욱 지금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여공저는 북송(北宋)의 제7대 황제 철종(哲宗·재위 1085∼1100년)에게 제왕의 수칙십개조(守則十個條)라는 상주문(上奏文)을 바쳤다. ‘외천(畏天), ‘애민(愛民)’‘수신(修身)’등 두 글자가 1개 조로 된 간결한 것인데 첫째가 ‘하늘을 두려워한다’이다. 둘째, 백성을 사랑한다. 셋째, 수신을 한다. 넷째, 학문을 닦는다. 다섯째, 현명한 사람을 등용한다. 여섯째, 간언(諫言)을 듣는다. 일곱째, 가렴(苛斂)하지 않는다. 여덟째, 사치를 멀리한다. 아홉째, 형(刑)을 줄인다. 열째가 ‘안일하지 않는다’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위 최고지도자가 명심 또 명심해야 될 수칙이다.

지난 14일 김대중 대통령은 내외신 연두기자회견에서 시종 어두운 표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대통령이 국민들 살기 어렵게 하고 고위 공직자에게 나쁜 짓 시켰겠는가. 대권 꿈에 취한 민주당원들 까지도 김대통령의 인사방침을 비판하고,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신문칼럼을 통해 “이게 ‘정치 9단’입니까”하고 충고하는 판국이니 더더욱 민망스럽다.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면, 여공저가 제시한 다섯째 수칙인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지 못한 게 실로 큰 실책이다.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