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풍자극

한 사람에게 백가지를 묻고 대답을 들으면 대충 그 사람을 알게 된다. 일선 기자시절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백문백답’란을 만들어 연재한 적이 있다. 영화 및 연극배우, TV 탤런트에게 연기는 창작과 모방 어느 쪽인가를 물었다. 대개는 창작이라고 하여 모방이라고 응답한 연기자는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연기는 모방이다. 픽션물은 작중 인물의 연출의도를 살리는 방향으로 철저히 따라가야 하는 것이 연기자다. 즉 연기는 모방인 것이다. 또 논픽션물은 실재한 사실을 리얼리틱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역시 모방이다. 가령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수종의 소임은 왕건을 재현해 보이는 것이지 왕건을 창조해 보는 것은 아니다. 연기를 모방이라고 한다하여 창조로 보는 것 보다 관념에 우열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건 착각이다.

며칠전 서울 정동 세실극장에서 이색 공연이 있었다. 김광수 한신대 교수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마당극 ‘붉은 뺨을 찾습니다’라는 연극이다.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손봉호·환경식 서울대교수,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와 이 밖에 전직 장관 등이 배우로 출연했다.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 정치인, 졸부, 지식인, 고관부인, 조폭, 사기꾼 등으로 변신, 세태의 부조리를 풍자한 내용이다. 육두문자가 나오기도 했다. 겉으로는 위엄을 떨며 속으로는 온갖 못된 짓을 예사로 저지르는 위선을 통렬하게 힐난한 이 마당극은 연기자가 아마추어인 점이 특징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선천적으로 연기의 자질은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이 프로냐 아마냐 하는 것은 자질의 수준, 그리고 얼마나 갈고 닦느냐에 달렸다.

그렇긴 하나, 이러한 풍자극은 또 아마추어가 하는 게 관객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설 수가 있다. 예의 연극보다 더 유별나게 더 많은 관객을 끌었던 것은 이를테면 대리만족의 심리작용이었던 것 같다. 총체적 부정부패에 식상해 있는 현실에서 부정부패에 실컷 욕해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통쾌한 일이겠는가. 바로 이런 점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던 모양이다.

세태 풍자극의 출연진이야말로 비리 정치인, 외곡된 지식인, 탐욕스런 고관부인, 졸부, 조폭, 사기꾼의 모방연기를 잘 해냈다 할 수 있다.

/白山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