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청산

2차대전 당시 피지배를 경험한 프랑스는 종전 이후 ‘ 나치 청산 ’을 위해 민관이 합동으로 민족반역자를 색출,처단하였는데 그같은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94년 4월 20일 프랑스 베르사유 소재 이브린중죄재판소에서는 79세의 폴 투비에라는 노인에게 ‘ 반인도적 범죄 ’라는 다소 생소한 죄명으로 법정 최고형인 종신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투비에는 7명의 유태인을 처형한 바 있었는데, 이 사실이 2차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최고지도층들에게 적용된 ‘ 반인도적 범죄 ’의 법정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판결된 것이다. 투비에는 그동안 숨어다니다가 1971년 퐁피두 대통령의 특사를 받아내기도 했었다.이에 ‘ 민족반역자처리위원회’ 판사였던 노르망 변호사 등이 다시 그를 법원에 고발했으나 1992년 파리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다시 상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이브린중죄재판소로 넘겨 처리토록 했는데, 이 재판소에서 1개월여동안의 유·무죄 공방 끝에 결국 종신형이 선고된 것이다. 이 재판 당시 묵은 상처를 다시 드러낼 필요가 없다며 ‘ 재판무용론 ’을 편 사람들에게 ‘ 과거 청산론 ’을 역설한 롤랑 뒤만 전 외무장관은 “ 이 재판은 절대로 시대 착오적인 것이 아니며 역사에 역류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대통령이 특사로 면죄시켜준 사람에게 다시 법원이 유죄선고를 내릴 수 있는 것이 프랑스의 국민정신이요, 프랑스 국민의 민족정기라고 당시 여론이 대단했었다. 프랑스가‘ 나치 청산 ’이라면 한국은 ‘ 일제 청산 ’이다. 엊그제 여야 국회의원 29명으로 구성된 ‘민족정기를 세우는 모임 ’이 일제하 친일활동을 벌인 주요인사 708명의 명단과 행적을 공개했다. 이른바 ‘ 을사 5적 ’과 ‘ 정미 7적 ’을 비롯, 일제하 중추원 관련자·작위 수상자·시도지사· 친일단체 관련자·판사· 고등계 형사·예술인 등 명단이 들어 있을뿐 아니라 계속해서 친일인사들을 추가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적법성 여부 및 후손들의 반발 등으로 격론이 예상된다. 모두(冒頭)에 프랑스의 ‘ 나치 청산 ’을 이야기한 것은 한국의 대통령은 이번 친일인사 명단 공개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 프랑스는 대통령이 특사로 면죄시킨 사람을 법원이 다시 유죄선고를 내린 사례가 있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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