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군사우편 찍혀있는 전선편지를/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복받치는 기쁨에 넘쳐 울었소…’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유행된 대중가요의 한 대목이다. 남편 또는 아들을 생사가 기약없는 전쟁터에 내보낸 당시 여인네들의 애절함이 담겨 있다. 편지엔 기쁜 편지, 슬픈 편지가 있지만 그래도 대개는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편지엔 또 젊은이들의 연애편지가 있어 낭만적이었고, 무엇보다 사회의 주요 통신 수단이었던 것이 1980년대 전화가 대중화 되면서 급격히 줄었다.

이어 1990년대에 역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는 편지를 용도폐기 하다시피 했다. 전화 한 통화면 국내 방방곡곡 어디고 간에 통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고 더욱이 E메일은 국내외 어디든 다 주고받는 편리한 세상이 됐으니 굳이 편지를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집배원(배달부)의 우편물이 편지가 주종이던 땐 문맹자가 많아 수취인에게 집배원이 편지를 읽어주곤 했던 게 지금은 우편물에 편지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각종 고지문 투성이다. 그냥 쓰레기통에 던질 달갑지 않은 유인물 아니면 갖가지 통지서로 우편행랑과 수취함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시류가 달라지면 달라지게 사는 것이 인간 생활이긴 하나 그래도 편지란 것을 생각해 본다. 전화통화로 육성을 전하거나 E메일로 전하는 것도 좋지만 나름대로 정성들여 쓰는 육필엔 지워지지 않는 정감이란 게 담겨있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 표현해 전하는 육필은 전화나 E메일과는 또 다른 인간적 체취가 깃들어 있다.

생활편의를 추구하다 보니 인간생활이 너무 기계화하여 점점 삭막해지는 세태가 됐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인간미를 잃어서는 곤란하다. 때에 따라서는 부모에게, 스승에게, 선배에게, 친구에게, 부부나 연인간에 두고두고 다시 읽어 볼만한 문안편지를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표에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를 주고 받는 재미도 가져볼만 하다.

요즘 우체국에 나붙은 ‘편지 쓰기’권장 현수막이 체신수입 올리기로만 단순히 치부해 넘길 수 없는 어떤 뜻이 있어 보인다. 값으로 말하자면 편지 우표 값만큼 싼 게 없다. 가끔은 편지를 쓰는 마음의 여유가 생활을 즐겁게 해준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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