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소리 기행(14)/강화 김병기의 시선뱃노래

옛소리 기행(14)

한강을 치오르던 소리 강화 김병기의 시선뱃노래

우리 민족의 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소리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많다. 태어나서 할머니나 어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를 비롯해 성장을 하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듣고 부르게 된다. 성장기에는 직접 동무들과 어울려서 소리를 하고, 장성해가면서 일노래를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생을 마감하고 가는 길에도 상여소리나 회다지소리를 듣게되니 일생을 소리 속에서 살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많은 소리들은 때로는 삶의 목적으로 불려지는가 하면 즐거움이나 슬픔을 나타내기도 하고, 공통된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불려지기도 한다. 삶의 장소와 목적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소리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소리가 갖는 의미가 깊기도 하고 무척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기야

빨리 저어라 어야디야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손질 맞춰 빨리 저어

저 배 보다 먼저가세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화장에야 밥지어라

배고파서 노 못젓겠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애아범아 빨리 저어라

마포장을 얼른보고

마누라두 자식들도 봐야겠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시선뱃노래다. 우리 소리의 특징은 사설이 꾸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민속경연대회 등을 거치면서 정제된 사설을 만들기도 하지만, 삶의 터전에서 나타나던 소리를 보면 자신이 처해진 환경을 노래할 뿐이다. 그 소리가 운이 맞든지 틀리든지, 아니면 앞뒤 문맥이 연결이 되든지 안되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소리를 메기는 사람이 자신이 처해있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사설로 표현하면, 받는 사람들은 그저 즐겁게 소리를 받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소리의 다양함을 창출했고, 현장성이 강한 소리, 혹은 창자의 내적 심성을 외부로 표출하는 소리가 되며, 지역적 특성과 주변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는 반농(半農), 반어(半漁)의 마을이다. 어업과 농업이 공존하는 마을 외포리는 3년에 한번씩 도당굿을 한다. 이 마을은 과거에 배가 40∼50척이나 있는 강화에서 제일 큰 포구였다. 이 곳에서 3대째 터를 잡고 살면서 어려서부터 고깃배 소리를 듣고 자란 김병기씨(남, 66세,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583-12)는 집에서 배를 부렸으며, 40대 초반에는 직접 자신이 배를 부렸다.

“어려서 바닷가에 가면 만선이 된 배가 한바탕 풍장을 치면서 만선기를 꽂고 들어오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나가서 신명나게 춤판을 벌이곤 했죠”.

김씨는 아직도 그 기억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만선이 된 고깃배가 모두 포구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철이 되면 미처 포구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바다에서 바로 딴 배로 옮겨 싣게되고, 시선배가 고기를 받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 마포나루로 향한다.

“시선배는 보통 5∼6명이 타게되는데 바다에 나가 어선에서 고기를 옮겨 싣고 마포나루로 갑니다. 시선배를 자대배, 운반배, 장누기배라고도 부르는데 고기를 옮겨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소리를 주고받으면 그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어요”

먹는 것은 사자밥이요

자는 곳은 칠성판이라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이놈의 바람은 왜 안부느냐

바람이 불어야 노를 안젖지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이이야 에이허

손바닥이 다 부르텃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소리를 보면 그 소리꾼이 처해진 상황을 알 수 있다. 배를 타는 어부들은 언제나 자신의 명(命)을 하늘에 맡기고 다닌다고 한다. 땅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시신이라도 있지만 바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하기에 언제나 그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삶의 터전인 바다에서 먹는 밥은 사자밥이고 누운 곳은 칠성판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자신의 명을 하늘에 맡기는 것이죠. 풍랑을 만나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것은 둘째치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기 때문에 더 두렵죠. 그래서 소리를 더 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소리를 하다 보면 피곤한 것도 잊을 수가 있지만 그런 두려움도 가시게 되거든요”.

소리를 하면서 어려움과 고통, 엄습하는 불안감을 다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이 김병기씨의 말이다. “소리가 별거 있나요.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소리고, 내가 살아가는 것이 다 소리죠”.

갯가에서 살다보니 보고, 배운 것이 뱃소리다. 자신이 직접 시선배의 선주로 한강을 거슬러 마포나루를 다니다 보니 소리에 대한 철학도 생겼단다. 1991년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인 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의 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각종 행사에서 회원들과 함께 소리를 하는 김병기씨는 더 늙어 힘에 부치기 전에 마땅한 후계자를 정해 소리를 전수해야 하는데 삶의 터전이 사라진 지금 누가 소리를 배우려고 하느냐며 걱정을 한다.

“예전에는 참으로 많은 소리가 있었죠. 고깃배를 타고 나가면, 나갈 때부터 고기를 잡아 포구로 들어올 때까지 소리가 없으면 일이 되지를 않았으니까요”.

그 많던 소리들이 차츰 잊혀져 가고 있는 것에 김씨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연습을 할 때도 배 모형을 만들어 배를 타고 소리를 한다. “소리는 현장감이 있어서 분위기가 제대로 나지 않으면 생명이 없어요. 그래서 모형이나마 배를 만들어 연습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 팔자가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비단이불을 펴놓고

창포 밭에 금잉어 놀듯

굼실굼실 잘도 노는데

내신세는 어이하여

칠성판을 떼메고 다니나

구구절절이 애환이 서려있다. 언제나 자신의 명은 자신 것이 아니라는 뱃사람들의 불안감, 그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뱃사람들의 처해진 환경이다. 우리 소리는 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창출된다. 애써 꾸미려고도 하지 않고 기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리를 한다.

“참 힘들었죠. 요즘이야 동력선이니 기계가 알아서 하지만 예전에는 손이 부르트도록 노를 저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노를 저으면서 하던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한사람이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분주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김병기씨. 자신의 선대들이 불렀고, 자신이 부른 소리 시선 뱃노래. 강화 외포리에 배를 띄우고 신명나게 풍장을 울리면서 고기를 푸는 그 모습이 그립다. 글/하주성(민속연구가)

※시선뱃노래 사설

저기 가는 저 할머니

딸이나 있거든 사위나 삼으쇼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아이야 그렇구 말구

보리밭에서 김만 매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딸은 하나 있건마는

나이가 어려서 못삼겠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아이구 어머니 그 말 마우

참새는 작아두 알만 까구

제비는 작아두 강남을 가요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중략)

사귀지 못할 친구는 뱃놈의 친구요

정들만 하면 뒤보듯 떼놓고 뚝 떠나간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달은 밝구 명랑한데

고향생각이 절로난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애아범아 빨리 저어라

행주참이 늦어간다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돈 실러가세 돈 실러가세

한양 마포에 돈 실러가세

(어야 디여차 어기야 디야

어이 어기야 에이야 허어 두루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