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보다 진한 세리머니 ’오노악몽 날렸다’

‘물보다 진한게 피’였던가.한민족의 가슴은 역시 한마음으로 뜨거웠다.

지난 2월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500m 결승에서 김동성이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하는 순간 분통을 터뜨리지 않은 한국민은 없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월드컵에 출전한 태극 전사들은 비록 종목이 달랐지만 가슴속 응어리만큼은 똑같이 품고 있었다.

10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D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0대1로 뒤진 후반 33분 동점 헤딩골을 성공시킨 안정환은 코너플랙으로 달려갔고 동료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안정환은 스케이팅 주법의 색다른 골 세리머니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면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뒤를 따라 온 이천수는 안정환의 옆에 서있다가 그의 옆구리를 건드린 뒤 두 손을 내저으며 올림픽 당시 ‘할리우드 액션’으로 심판들의 오심을 유도했던 오노의 야비한 행동을 재현했고 모여든 대표선수들은 모두 스케이팅 주법으로 골세리머니를 함께 해 진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제서야 선수들의 골세리머니가 무슨 뜻이었는지 눈치챈 관중들은 목청껏 환호성을 높였다.

안정환은 경기 뒤 “미국전을 앞두고 선수들끼리 골 세리머니를 논의했었다. 김동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는데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전을 앞두고 정부는 ‘반미 감정’이 되살아날까 우려해 반미시위를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며 자제해 줄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었다.

또한 피해 당사자인 김동성은 자칫 국민 감정을 자극할까, 당초 대구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응원하겠다던 계획조차 수정했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 관중은 물론 안정환을 비롯한 대표선수들도 김동성의 억울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안정환의 ‘스케이팅 골 세리머니’를 지켜 본 김동성은 크게 위안받았겠지만 내친 김에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내 화끈하게 한풀이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경기였다./월드컵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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