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홍명보가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자 광주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2천여 관중은 “홍명보, 홍명보!!”를 연호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홍명보가 오른발로 날린 승부차기 슈팅이 스페인 골네트를 가르는 것과 동시에 가슴을 졸이던 4천700만 국민은 한꺼번에 “와∼!” 하는 탄성으로 지축을 흔들었다.
불과 나흘 전인 지난 18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117분의 혈투를 벌여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23인의 ‘태극전사’가 연출한 경기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와 다름없었다.
이탈리아전 여파 때문인지 한국 선수들의 몸은 킥오프 휘슬이 울릴 때부터 천근만근 무거워 보였다.
움직임이 둔한 탓에 패스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고 특유의 좌우 측면돌파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 대표팀의 첫 슈팅이 나온 것은 경기가 시작되고 40분이 지난 다음. 문전 혼전중 흘러나온 볼을 이영표가 아크 오른쪽에서 중거리 슛을 때렸지만 수비를 맞고 골문을 비껴나갔다.
전반 45분을 통틀어 한국 선수가 기록한 유일한 슈팅이었다.
반면 스페인은 경기 초반 탐색전을 펼치다 전반 18분 루벤 바라하의 문전 오버헤드킥을 기화로 공격의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 인저리타임까지 스페인의 거센 공세에 한국은 혼쭐이 났지만 ‘야신상’ 후보로까지 꼽히는 골키퍼 이운재가 마지막 보루로 지켜주었다.
이운재는 전반 27분 모리엔테스의 헤딩 슛을 잡아내며 골포스트에 팔을 부딪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필드의 선수들을 독려했고 전반 45분에는 데 페드로의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을 침착하게 펀칭해 냈다.
스페인도 대표 ‘골잡이’ 라울의 결장 탓인지 골 결정력에 문제를 보였다.
한국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 가슴을 쓸어내린, 스페인으로서는 가장 아쉬운 장면은 전반 42분에 연출됐다.
뛰어난 돌파력을 보인 호아킨 산체스가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뒤 문전으로 낮고 강하게 띄운 공이 쳐내기 위해 나온 이운재를 통과, 뒤쪽에서 달려드는 모리엔테스 앞으로 흘렀지만 다행히 모리엔테스의 발끝에 닿지 않았다.
전반 인저리타임인 49분에는 데 페드로의 오른쪽 코너킥을 이에로가 문전에서 헤딩 슛, 그물이 출렁였지만 골대 위쪽에서 그물에 얹혀 천만다행.
한국은 후반 4분에도 결정적 위기를 맞았다.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허용한 프리킥을 데페드로가 왼발로 문전을 향해 감아찼고 7∼8명의 선수가 함께 점프한 사이에서 김태영의 등을 맞은 공이 이운재 옆을 지나 골문에 빨려들어갔다.
4만2천여 관중이 탄성을 지르는 가운데 주심의 휘슬이 울리며 자리다툼 과정에서 엘게라가 박지성을 밀어 반칙을 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안도의 한숨을 쉰 한국은 유난히 움직임이 둔한 유상철 대신 이천수를 투입했고 후반 20분 가장 아쉬운 장면을 연출했다.
송종국이 오른쪽 코너킥을 올리자 공격에 가담한 장신 수비수 최진철이 골지역 왼쪽에서 헤딩, 이천수에게 떨궈주었고 이를 이천수가 오른발 슛했으나 수비 몸 맞고 다시 반대쪽으로 흘러갔다.
수비 몸 맞고 흘러간 공은 박지성 정면으로 떨어졌고 이를 박지성이 골키퍼와 마주선 상황에서 강하게 오른발로 찼지만 카시야스가 뻗은 오른쪽 손에 걸리고 말았다.
전후반 90분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에 들어갔고 지루한 ‘평행선’은 연장 전반 10분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호아킨이 스로인해 준 볼을 모리엔테스가 달려들며 논스톱으로 터닝 슛, 이운재가 멍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골문쪽으로 날아가던 공은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갔다.
한국은 연장 후반 5분 이천수가 오른쪽을 돌파,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반대편으로 살짝 띄운 볼을 황선홍이 오른발에 맞췄으나 뒷걸음질 치다 슈팅을 날린 탓에 제대로 맞지 않았다./월드컵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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