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칼럼>이운재 선수의 선방

골키퍼는 축구에서 가장 외로운 포지션이다. 최후의 집중공략 대상이기 때문이다. 관중은 골인에 환호하지만 골키퍼는 그때마다 참담하다. 골키퍼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헤딩슛과 시야를 가린 킥이다. 헤딩슛은 방향 예측이 불가능하다. 발로 때리는 강슛은 아무리 위력이 있어도 볼에 발을 갖다댄 순간만 포착되면 대개는 방향이 가늠된다. 그러나 헤딩슛은 방향을 종잡기가 어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문전 혼전으로 서로간의 선수들에게 시야가 가린 가운데 날아드는 볼 또한 무섭다. 왜냐하면 지상 강슛 역시 볼이 뜨는 순간만 알면 대개는 선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볼이 채이는 것을 못본 채 뜬 볼을 골키퍼가 발견했을 땐 순발력을 발휘해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승부차기에 들어가면 골키퍼는 완전히 승패의 부담을 도맡다시피 한다. 키커의 부담도 크지만 골키퍼의 심정은 한마디로 납덩어리가 된다. 스타플레이어가 골키퍼와 일 대 일로 맞서는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를 잘하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공률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이 선수시절에 박스컵대회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적이 있다. “볼을 어떻게 찼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그의 후일담이다. 스페인 최고의 스트라이커 라울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이번 월드컵대회에서도 우리는 두번의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그러나 이는 약 20%의 확률이 적중한 것일뿐 성공률이 통상 80%다.

이때문에 골키퍼는 고군분투한다. 페널티킥과 승부차기는 성격이 다르긴 하나 골키퍼의 부담은 거의 같다. 키커와 골키퍼의 기 싸움은 눈빛에서부터 시작된다. 신경전도 겸한다. 키커에게 골키퍼가 커보이고 골키퍼에겐 볼이 커보이면 축구의 신(神)은 골키퍼의 편에 선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키커의 손을 들어준다. 월드컵에 승부차기가 시작된 것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대회다. 이번 대회에서는 스페인 대 아일랜드의 16강전 이후 두번째로 한국 대 스페인전의 8강전에서 있었다. 스페인은 승부차기와 묘한 인연을 가졌다. 스페인대회에서 도입된 승부차기로 이번 대회의 16강전에서는 이기고 8강전서는 패배의 고배를 들었다.

‘거미손’ 이운재 골키퍼가 네번째 스페인 키커 호아킨의 슈팅을 왼쪽으로 몸을 날려 잡아냄으로써 승부차기 5-3으로 4강진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뛰어난 감각과 순발력과 자신감이 이끌어낸 수훈이다. 이운재 선수는 이밖에도 상대팀에게 내준 노마크 찬스 때마다 과감하게 공격 각도를 좁혀 슈팅의 성공을 무산시키는 등 위기에 처할 때마다 눈부신 선방을 보였다. 외로운 골키퍼 자리를 의연히 지킨 이운재 선수의 결단성 있는 활약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