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책임 무거워졌다

8·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13곳에서 호남 2곳을 뺀 11곳을 차지함으로써 국회 재적의원 272석의 절반(136석)을 넘긴 139석이 됐다. 이른바 여소야대를 만들어낸 1988년 13대 선거 이후 여야를 통틀어 처음으로 한 정당이 과반수가 됐다. 한나라당이 마음 먹기 따라서는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자민련 등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들의 도움도

필요없어졌다.

적어도 국회내에서는 가히 한나라당의 시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개정과 대통령 탄핵 등 일부 특수안건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입법권을 모두 장악한 것이다. 우선 대통령 아들 비리 등에 대한 특검이나 청문회,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단독으로 추진할 여력이 생겼다. 아울러 중립내각 구성, 햇볕정책 재검토, 인사청문회 확대 등을 관철하기 위해 정부와 민주당을 더욱 압박할 수 있게 됐다.

어제 발표한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 국회 임명동의안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 도 있다. 그러잖아도 한나라당은 언론과 학자, 많은 국민이 총리 서리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했음에도 김대통령이 다시 서리를 임명했다고 공격에 나섰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자만에 빠져서는 안된다. 휴가기간이자 평일이었던데다 수재까지 겹쳤다고는 하지만 투표율 29.6%는 선거의 의의를 무색케 했다. 부산 해운대 기장갑은 18.7%의 유권자만 투표해 국회의원 선거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치불신 또는 정치염증에서 비롯된 투표기피 현상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이점에서는 모두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다. 승리했다는 도취감보다 먼저 자성부터 해야 한다.

재적과반수만 믿고 모든 사안을 힘으로만 밀어 붙여서는 안된다. 국회를 지배하게 된 한나라당은 이제야말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8·8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당내 각파 세력들이 신당 창당을 향한 각개약진에 나섰다. 이런 추세라면 신당이 창당되는 등 정치권의 변동이 있을 게 분명하다. 정쟁이 더욱 격화할 지금이야말로 상생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임기말의 정부를 의석수로 무력화한다면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이 흔들릴 소지가 있다. 절대로 오만해져서는 안된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했을수록 더욱 몸을 낮추고 다수의 횡포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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