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이 걱정스런 쌀문제

쌀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 당시 쌀시장 개방 10년유예를 얻어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오는 2004년은 쌀을 개방하거나 재협상을 해야 한다. 지금의 처지에선 쌀시장을 개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재협상이 낙관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관적이다. 개방유예 조건인 감산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예조건을 안지켰으면서 또 유예를 요구하는 재협상엔 협상력을 살리기가 어렵다. ‘최선을 다해 개방을 막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정부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은 수매가를 꾸준히 내렸다. 감산을 유도하는 구조조정 끝에 지난 1999년 벌써 개방해 놓고 있다. 우리와 함께 관세화 유예를 받았던 일본이 이처럼 앞당겨 개방한 마당에 앞으로 1년반 남긴 재협상시 우리에게만이 유예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볼 수 있는 보장은 없다.

그동안 양곡유통위원회의 수매가 인하 건의에도 정치논리에 의해 수매가를 다섯차례나 올려 증산을 부추겼다. 재고미가 사상 최대로 1천300만섬을 돌파, 이젠 더 쌓아둘 곳도 없다고 정부는 비명이다. 연간 보관비만 해도 590억원이 드는 지경이 됐다. 400만섬을 가축용 사료로 돌리자고도 하고 북측에 퍼주자고도 한다.

농업정책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수매가 인하에 이은 폐지, 관세 자유화 등 종국적으로 시장에 맡겨도 경쟁력 있는 농업구조로 육성시킬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같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국내 논농사는 외국에 비해 생산비 절감이 어려운 여건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때문에 예컨대 대단위 기계화가 불가능한 논은 전작화가 절실한데도 이런 노력마저 제대로 기울지 안했다. 그저 해마다 미봉책에 급급해 왔다. 이 정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김영삼 정권 때 이미 쌀문제에 대한 장기계획의 집행이 있어야 했다. 전 정부가 잘못했으면 이 정부라도 잘해야 할터인데도 역시 세월을 헛보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그랬으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도 정권말 탓인지 아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2003년 2월 들어서는 새 정부는 또 새 정부 초기이기 때문에 세월을 잡아 먹을 것이다. 2004년 닥치는 쌀시장개방 재협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실로 걱정이다.

수해가 있었지만 올 논농사 또한 대풍이 예상된다. 반가운 대풍을 걱정꺼리로 만든 책임에 대해 위정자들은 어떻게 질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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