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의 변화 노력은 시인할만 하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여기는 이른바 신사고(新思考)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와 ‘개혁’은 상충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도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모험을 거는 것이 제한적 시장경제 도입이다. 특히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은 외자 등 물자유치로 경제개혁을 이루고자하는 파격적 마지노선이다. 이미 내부자원이 고갈된지 오래인 북의 입장에서는 외부지원의 수혈이 절대적 단계에 들어섰다. 신의주 경제특구가 파격적인 것은 폐쇄적 경제특구인 나진-선봉지구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입법 행정 사법권까지 독립시키는 구상을 갖는 건 개방을 의미한다.
북의 이같은 변화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으나 반면에 착각을 일으키는 함정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우선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특히 군부의 동향이 주목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일총리 방북시에 한 말에서도 이런 의문이 발견된다. 김 위원장은 괴선박 사건에 대해 ‘그기까지 가서 그런 일을 저지를 줄 몰랐다’면서 ‘특수부대가 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번 6·29 서해교전을 도발했을 때도 북측의 유감표명에서 군부대의 단독소행임을 은유적으로 비췄었다. 괴선박이나 서해도발의 군사행동이 감히 국방위원장 모르게 자행됐을 것으로는 지극히 보기 어렵다. 군부대 통솔권의 누수로 보는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고이즈미 일총리에게 서슴없이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면서 사과했다. 노동당 중심으로 당·정·군이 일체가 되어 돌아가는 것이 북의 체제다. 이점에서 당·정·군을 망라해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김 위원장이 한 말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알고도 몰랐다고 하는 관측이다. 외교상 의례적 둔사로 하는 발뺌이다. 또 하나는 정말 몰랐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견해다. 이 경우는 김 위원장의 절대적 지위에 흠결을 가져온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반발하는 군부세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고도 몰랐다는 얘기로 귀납되며, 이는 한손엔 경제, 또 한손엔 무기를 거머쥐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한적 시장도입과 간헐적 무력도발의 양면은 곧 북의 두 얼굴이다. 김 위원장의 신사고는 경제를 위한 것이지 군사대국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철도 연결을 위한 일부 비무장지대(DMZ)의 지뢰 철거는 괄목할 사실이긴 하나 이로써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정부의 벙키C유 등 유류 대북지원 검토는 성급해도 지나치게 성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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