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
발해(渤海)는 중국 송화강 이남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국토를 이룩한 우리의 옛 왕국이다. 서기 699년 대조영(大祚榮) 등 신라에 망한 고구려 유민들이 세워 926년 요(遼)나라에게 망할 때까지 227년동안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다.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가 도읍지였다. 연해주에선 아직도 발해시대의 기와 등 유물 유적지가 발견되곤 한다. 중국 흑룡강성박물관에는 발해 유물전시관이 따로
있다. 고구려에 이어 발해가 망함으로써 요령성 일원에까지 뻗쳤던 우리의 옛국토가 중국에 돌아가 오늘에 이르렀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중국땅의 고구려는 자기들 역사라고 우긴다. 발해도 자기 나라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러시아까지 발해를 자기 역사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국권이 미치지 못한 탓이다. 얼마전 노태돈 서울대교수(국사학)는 중국 해성(海城)현의 옛 안시성(安市城)인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을 찾다가 공안원에 억류돼 필름까지 빼앗기는 곤욕을 치렀다. 안시성은 고구려 양만춘(楊萬春) 장군이 당 태종(唐 太宗)이 이끈 대군을 궤멸한 대첩지다. 흑룡강성박물관에서는 한국사람이 발해 유물을 메모하는 것 조차 막는다.
고구려의 옛 땅이 중국땅이 되어 역사의 일부를 잃은 것도 안타깝지만, 발해 역사는 사료가 생소할 정도여서 송두리째 잃은 것같아 더욱 안타깝다. 평생을 발해사 연구에 몸바친 방학봉 전 연변대 교수는 “우리가 소홀히하면 발해는 남의 나라 역사가 되어버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선족인 그는 지난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자신의 저서 ‘발해성곽’출판기념회에 참석키 위해 왔었다. 연변 돈화(敦化)현에 있는 발해 3대 문왕(文王)의 딸 정혜(貞惠)공주의 무덤을 발견하는 등 발해의 화폐, 문화, 소를 이용한 농경법 고증 등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역사학자다.
비록 한반도마저 분단된 형편이긴 하나, 만주땅과 러시아 연해주까지 차지한 넓고 넓은 국토를 누빈 선조들의 호연지기를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좋은 역사를 지닌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정부는 고구려와 발해사 연구를 위한 국내 학자의 현지실사 등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는 역사문화 외교에 각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선조가 이룬 문화유적지를 찾지도 못한대서야 후대로서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극(史劇)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또한 근대사의 권력 투쟁따위 보단 고구려나 발해의 만주땅 활약을 무대로한 자랑스런 역동적 사실(史實)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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