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DJ의 부메랑

/임양은(논설위원)

그는 북악산을 바라보며 때때로 무슨 상념에 잠길까. 불과 넉달반도 안남긴 지난 청와대 생활을 돌이키는 감회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다. 오늘의 회한을 과연 업보로 받아 들이는 것일까. 이또한 알고 싶다. 하지만 그러는 것 같지가 않다. 잘못된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신문 탓으로도 여기는 것 같다. 덮어줄 수 있는 허물을 들쑤셔 자신을 흔든다고 여겨 보인다.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국민의 가슴속에 그나마 좋게 살아 남았을 수가 있었다.

가장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이 마당에서 그에겐 유일한 업적으로 내세우는 남북관계마저 흠집을 가져와 퇴색시켰다. 팔십고령이다. 인생의 연륜으로도 해탈의 경지에 다가선다. 이뿐인가. 현해탄에서 수장될 뻔 하고, 사형선고를 두번이나 받은 정치역정속에 정상에 올랐으면 그 또한 해탈의 경지에 들어설만 하다. 그런데도 이를 이루지 못하고 범부와 다름없는 오욕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DJ의 불행이며 나라의 불행이다. 한데도 그걸 모르는 우둔함은 뭔가. 일찍이 지녔던 그의 총명을 권력이 흐르게 한다. 권력의 주술에 마취된 탓이다. 퇴임을 눈앞에 두고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권력에의 마취현상은 그 중독성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DJ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북한에 몰래 돈을 줬는지. 국가의 영광이라는 노벨상을 로비에 의해 받았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단 1달러도 비밀로 준 적이 없으며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처벌을 받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앞에 나오셔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씀하셔야 한다…. 계좌추적을 하든 검찰이 나서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정장선 민주당의원)

“국민은 혼란스러워 한다. 계좌추적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한광옥 최고위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고발했다면 계좌추적이 가능한 것 아니냐…. 현대상선의 반기보고서 기재 누락이 금융실명제법상 부외거래에 해당되므로 계좌추적이 가능하지 않느냐.”(김영환 민주당의원)

“이 문제에 연루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사퇴시켜야 한다.”(신기남 민주당최고위원)

“산업은행 4천억 대출은 마땅히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로마의 카에사르가 원로원에서 당한 공격에 방어를 포기한 것은 그가 아들처럼 여겼던 브루투스의 가담이 확인되고 나서였다. DJ가 내세운 노무현 후보를 그뒤 절연한 것은 물론 이즈음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브루투스적 공격을 받고도 꼼짝 안한다. 지금 스스로 입을 열지 않으면 다섯달 뒤엔 강제로 입을 벌려야 한다는 사실을 DJ는 모르고 있다. 지금의 그의 모습은 일세의 풍운아도, 민주화 투사의 면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정상의 권력에 중독된 노인의 황당한 고집을 보일 뿐이다. 차라리 대북 비밀지원설의 진실은 이렇다고 당당히 밝히는 것이 그다운 모습인데도 입을 꽉 다무는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다. 의혹은 그래서 더욱 증폭된다. 말못할 그 무엇의 깊은 사연이 있는 것으로 더욱 더 의심이 든다.

아무래도 해탈을 바라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므로 하여 그에게 돌아갈 부메랑이 그 정도이겠는가. 퇴임후의 사저, 유서깊은 동교동 집을 헐고 지은 아방궁 같은 새 집이 그의 집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그는 북악산을 바라보며 어떤 상념에 잠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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