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
전통적으로 풍년을 상징하는 것은 쌀의 많은 생산량이다. 볏가릿대 세우기나 줄다리기 등의 기풍의례(祈豊儀禮)가 정월에 집중했던 이유도 쌀의 생산량을 늘려 보려는 간절한 기원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이 땅에서 벼농사가 뿌리 내릴 당시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쌀은 하층민들이 먹기에는 매우 귀한 고급 곡식이었다. 조상 제사 때나 돼야 고기와 함께 겨우 맛볼 수 있을 정도였다. 불과 30∼40년전 보릿고개 시절에도 평소 쌀밥 먹기란 매우 어려웠다.
제사에 올리는 제물 중에서 곡물로는 쌀로 한 ‘메’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밥을 올리지만, 굿이나 고사 등 신(神)을 위한 제사에서는 생쌀을 그대로 올린다. 즉 조상들은 메를 먹지만, 신들은 생쌀을 먹는다. 조상은 사람의 식성과 같지만 신은 다르다는 관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이처럼 신을 위한 제사에 쌀이 오르는 것은 쌀은 보리나 콩같은 곡물과 달리 신성함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당들이 점을 칠 때 쌀을 이용하는 것도 ‘신의 뜻을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촌에서는 귀신들을 쫓아낼 때도 쌀을 사용한다.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거나, 도깨비불 등이 나타나 괴롭히면 쌀을 배에 뿌려 정화시킨다. 쌀의 신성한 능력은 벼의 짚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금줄이 좋은 예다. 일반적으로 새끼줄을 꼬는 것은 오른쪽 방향이다. 반대로 왼편으로 꼰 새끼줄은 금기(禁忌)의 관념이 담겨진 금줄이다.당제(堂祭)를 지낼 때나 아기를 낳았을때 당(堂)이나 대문에 금줄을 친다. 금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다.
금줄을 짚으로 꼬는 것은 역시 쌀이 지닌 상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성함과 잡귀를 쫓을 수 있는 주술적 능력을 지닌 쌀의 신통력에 의존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쌀이 올해는 흉작이라고 한다. 예부터 쌀이 유명한 여주지역에서도 70%나 줄어든 곳도 있다고 한다. 쌀로 동물사료를 만들려고 했을 정도로 재고쌀이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쌀풍년이 들었어야 했는데 수심에 잠긴 농민들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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