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몽준, 정몽준 노무현은 그랬다. 후보 단일화 협상의 축배로 서로 어깨를 감아 술잔을 드는 러브샷을 연출했다. 그러고는 포장마차로 나란히 갔다. 그러나 동상이몽, 오월동주같은 희대의 심야 정치쇼는 그 이튿날 날이 밝으면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여론조사방식 유출 공방으로 협상은 물건너간 듯한 험악한 분위기를 보이다가 일단은 다시 봉합됐다.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단일화 협상은 첩첩산중일 게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단일화의 성공보단 실패에 대비하는듯 해 보인다. 서로가 상대에게 밀린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는다. 내쪽으로 단일화 되는 전제 속에 결렬되거나 결과에 불복해야 할 경우의 명분 쌓기용으로 뒤집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성공은 내가 잘해서 되고 실패는 니가 못해서 됐다는 구실 찾기 퍼즐게임의 냄새가 짙다. 그렇다고 판을 벌이지 않을 수도 없다. 설령 깨질 때 깨지더라도 판을 벌이지 않으면 단일화 거부죄로 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맘 같아선 당장 치우고 싶어도 서로가 참고 참으며 가는데까지 끌고가는 억지 춘향놀음이 이래서 상영되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이란 것도 그렇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은 다분히 정치적 절충이다. 선거법상으로는 특정인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두 후보만의 텔레비전 토론이란 게 위법의 소지가 없지 않으나,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워 내린 결론의 고민이 그 속에서 묻어난다.
이래서 세번 하겠다는 것이 한번으로 제한된 텔레비전 토론이지만 도대체 뭘 토론하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노무현은 진보 정치인인데 비해 정몽준은 보수 정치인이다. 이미 정몽준이나 노무현의 성향이 다 드러나 있는 마당에 토론을 붙여봤자 그게 그것이다. 만약 옷 잘 입고 넥타이 색깔이나 화장에 신경쓰고, 이상한 제스처를 섞어가며 부리는 말 재주의 깜짝쇼 대결이 된다면, 그건 한낱 개그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고 무슨 공약 대결이 된다해도 어설프긴 마찬가지다. 비단 두 후보뿐이 아닌 모든 대선 후보에게 공통된 병폐가 있다. 백화점 진열품같은 공약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권력이 세다하여도 100대공약, 150대공약 같은 걸 보면 어지러워 실소가 터진다. 어느 세월에 무슨 수로 다 해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YS나 DJ의 전철에 비추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홍문일회’라는 홍문의 잔치가 있다. 항우는 법증의 권고로 유방을 초청, 연회를 베풀면서 죽이려 했으나 유방은 장량의 계교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후보의 러브샷 속에 주변의 두 후보 진영은 만면에 웃음과 함께 박수를 터뜨린 그날 심야의 국회 귀빈식당은 비록 잔치는 없었지만 ‘홍문일회’를 연상케 했다. 단일화에 따른 말썽의 소지는 두고 두고 많다. 벌써부터 여론조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느 후보의 녹음으로 추정된 다부진 육성 공세가 핸드폰을 통해 횡행하곤 한다. 여론조사까지 가서 그 결과가 나온다 해도 역시 승복은 의문이다.
이토록 어렵게 보는 후보 단일화의 전망이 부정되려면 그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성공하면 어느 쪽이든 이회창과 더불어 양강 구도가 되겠지만, 실패로 끝나면 정·노, 노·정은 원수가 되는 가운데 어느 한쪽은 돌이킬 수 없는 더욱 심한 자충수의 치명상을 입는다.
단일화 협상은 야합이라기 보다는 도박이다. 두 후보는 정치사상 초유의 대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흐렸다 갰다하는 불연속성 기류의 연속이다. 정치는 협상이며 탁월한 정치협상은 예술이다. 물론 단일화가 된다 해도 대선의 결과는 예측하기 곤란하다. 그렇긴 하나, 실패로 돌아갈 경우엔 협상을 사기극으로 보는 객관적 시각을 면하기가 어렵다. 정치 예술인지, 아니면 정치 사기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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