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컬럼/당근보다 쓴 약을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 여러분 들에게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겠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치는 당당한 대통령 후보가 없다. 대통령 자리가 무슨 부자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나 요술뭉치인 손오공의 여의봉같지 않은 바에야 혼자 무슨 수로 국민을 다 좋게 해준다는 건지, 턱도 없다. 결국은 국민이 피땀 흘려가며 노력해야 하는데도,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잘 살게 해주는 것처럼 하는 말 장난은 선무당같은 헛소리다.

사태처럼 쏟아낸 공약이란 것을 정작 후보들은 다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이 방패를 뚫을 창은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 창이 뚫지못할 방패는 없다’는 어느 고사의 장사꾼 말처럼 서로 모순된 내용 투성이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 없이 다 똑같은 백화점 진열품같은 이런 선거공약을 보고 투표할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역시 궁금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선거공약을 내거는 건 물론 당연하지만 원칙적으로 신뢰가 담긴 공약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선거공약 양산으로도 모자라 어느 당이 개인 워크아웃을 3억원까지 늘려 신용불량자를 구제한다는 선거 선심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5천만원의 빚 한도로도 실효가 별로인 지경에 어느 은행이 부실을 떠안고 3억원까지 탕감해 주겠는가 말이다. 선심은 자기네가 쓰고 경영책임은 은행으로 미루는 날치기 선심은 곧 사기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이런 얄팍한 속보이는 소린 이제 제발 그만 둘 때도 됐는데 아직도 한다는 소리가 기껏 이모양이다.

텔레비전 토론이란 걸 보아도 시원치가 않다. 예컨대 핵 관련의 대북정책에서 온건론이나 강경론 할 것 없이 원론적 수준의 그 말이 그 말이다. 대통령 후보다운 경륜은 들려주지 못하고 유권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경륜이 있다할 수 없다. 말꼬리 늘어잡기, 흠집내기, 무성영화 변사처럼 청산유수로 말하는 것이 반드시 유능한 후보는 아니다. 오늘날 영국 국민이 자랑스런 영국인으로 단연 톱을 꼽는 윈스턴 처칠이 말을 잘해서 수상을 두번이나 지낸 것은 아니다. ‘제1·2차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지만 말은 오히려 눌변에 가까웠다. 인기영합의 대중주의에 아첨하지 않는 원칙주의의 진실성 추구가 지금까지 영국 국민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정치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지 못한 건 국민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정치 지도자가 없었던 이유가 더 크다. 유권자들에게 듣기좋은 말만 일삼는 정치 지도자는 진실성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도 모든 일을 다 잘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는 부분이 있어도, 설령 국민 개인적으로는 손해보는 대목이 있어도 승복감이 가는 대통령이야 하고, 이런 대통령은 대통령 자신부터 국민에게 먼저 스스로를 내던지는 도덕성 확립을 입증해 보여야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우리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후보들의 당근이 아니고 쓴 약이다. 유권자들에게 퍼붓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고 소신있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비굴한 후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교만해지고, 당당한 후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겸손해진다. 교만한 대통령은 독선에 사로잡혀 강한것 같지만 리더십을 잃고, 겸손한 대통령은 덕망을 갖추어 약한 것 같지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개혁을 말하지만 개혁은 독점물일 수 없고, 개혁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개혁은 인간사회의 영원한 과제인 것이다. 다만 이번 대선의 두드러진 특징은 있다. 텔레비전 토론에는 세명의 후보가 나오지만 결국 보혁 대결의 구도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 여러분 들에게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대통령 후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신뢰가 가는 후보는 국민의 인내와 노력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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