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농간(수사법·말장난)이 너무 심하다. 대통령 집무실(청와대), 중앙부처, 국회의사당을 충청권으로 옮긴다면 이건 수도를 송두리 채 옮기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이 수도가 된것은 1394년(조선 태조3년)이다. 유서깊은 600년여의 수도를 두고 천도(遷都)를 말하면서 ‘행정수도’이전이라고 호도한다. 충청권엔 선심을 쓰면서 수도권의 충격을 줄이려는 기막힌 수사적(修辭的)기법이다.
천도에 5조원이면 된다거니 턱도 없다거니, 임기내에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하는 얘기는 구문(舊聞)이다. 1900년 독일 통일 후 이듬해 연방의회가 분단 이전의 수도 베를린을 다시 수도로 결정했으나 아직도 본에서 다 옮기지 못했고, 일본은 14년째 논의 중인 가운데 부정적이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캔버리 천도 18년 동안에 천문학적 수치의 돈을 들인 것 등 외국의 사례 역시 다 알려진 얘기다.
민초가 이사를 가는데도 가족들에게 물으가며 이 궁리 저 궁리를 다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유분수지, 뚱딴지처럼 수도를 이사한다는 날벼락같은 소린 해도 너무 즉흥적이다. 그저 대통령 살 집 짓고, 종합청사 짓고, 국회의사당만 지어면 수도를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은 단세포적 발상이다. 외국의 사례가 보여준 그 어려움이 그들은 바보여서 그런 어려움을 겪은 건 결코 아니다. 행정수도를 인구 50만에서 100만명 수준으로 조성한다는 것은 도시문제를 잘 모르는 소리다. 행정수도를 선민(選民)도시로 제한할 수는 없는 일, 그러고 보면 거대한 취락도시가 형성돼 충청권으로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교통 환경 등 갖가지 후유증이 심각해진다.
서울은 뉴욕 역할을 하고 행정수도는 워싱턴 역할을 한다는 소린 그야말로 역사를 간과한 논리의 비약이다. 서울과 뉴욕, 워싱턴과 행정도시의 대비는 생성 여건이 달라 비교가 불가능하여 말이 안된다. ‘긁어 부스럼 낸다’는 속담이 있다. 천도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수도권은 국민총생산의 약50%를 차지한다. 전국 중소기업의 46%가 수도권에 있다. 이건 현실이다. 이런 편중이 문제가 된다면 시장원리에 의한 해결을 무리 없이 장기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수도권 지역사회의 삶의 질이 저해받는 사실을 수도권 주민의 입장에서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천도설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수도권 주민이기 때문이기 보단 비록 삶의 질에 기왕 영향을 받아도 국민경제에 긁어 부스럼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 있다. 국민정서다. 유서 깊은 서울을 버리는 천도에 과연 사회정서가 동의하겠느냐는 의문이 충분이 성립된다. 부산이나 목포에서 ‘서울 간다’는 말엔 일체감이 있어도 ‘행정수도 간다’는 말엔 위화감만 갖기 십상이다.
수도 서울은 휴전선과 지척지간이다. 안보상의 문제를 지녔으면서도 그동안 잘 지켜왔다. 이런 수도를 놔두고 하필이면 쫓겨가는 것처럼 남하하는덴 국민감정이 용납하지 않는다. 서울은 통일 한반도의 중핵이다. 장차 통일돼도 서울은 여전히 수도다. 천도를 말하자면 국위가 위축해 보이는 남하보단 진취적 기상을 드러보이는 북상이 훨씬 더 낫고 지리적으로도 합당하다. 그렇지만 남하든 북상이든 수도의 천도는 거론할 일이 아니다. 북상하는 제2의 수도 기능을 앞으로 언젠가는 검토해야 하겠지만 천도자체를 말하는 것은 역사의 거역이다.
수도권 비대화를 들먹이는 천도설은 한 낱 구실에 불과하다. 한반도 통일시의 비대화를 해결할 방법은 당찮은 천도에 있는 게 아니고 북상개발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감정과 사회정서가 용납하지 않는 우격다짐의 천도설을 제기하는데도 막상 당사자인 수도권 지역사회는 입을 다물고 있다. 위세에 가위가 눌린 것인지, 아니면 하도 말같지 않아 대꾸를 안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든 행정수도 이전, 천도설은 가당치 않다.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국기(國基)와 관련한 중대사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