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촛불 시위가 수십만 인파로 뒤덮였다. 촛불 시위는 미국, 프랑스 등지 교포들도 가세해 바야흐로 해외로까지 확산됐다. 외신들 또한 주요 기사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촛불바다가 미대사관 앞을 덮쳤다’고 하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은 ‘SOFA개정촉구’, 미국 AP통신은 ‘부시 공개사과 요구’ 등 내용으로 기사를 다루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하고 유감의 뜻을 밝히긴 했다. 외국의 원수가 우리의 국가 원수에게 비록 전화통화이긴 해도 사과했으면 직접 사과를 한 건 맞다. 주일 미군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사과 역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한 전례가 있다. 이런데도 촛불시위는 근원적 대책이 포함된 부시의 공개사과를 거듭 촉구하면서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된데는 한·미 두나라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진한데 그 원인이 있다. 우리 정부는 안일하게, 미국 정부는 성의없이 대처함으로써 국민적 분노를 유발하였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촛불시위가 미국을 적대시하는 반미는 아니다.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이 무죄로 평결난데 대한 사법 주권의 회복운동인 것이다. 그 거대한 촛불시위 군중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이를 반미운동으로 왜곡하는 것은 대선을 틈탄 정치권 일부라고 보아 심히 경계해야 한다. 또 대선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 선거에 정략화하는 몰염치는 마땅히 배격돼야 한다.
반미까지는 아니지만 대미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미군인들의 택시승객 폭행사건이 또 일어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두 나라 관계 당국은 엄정한 수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재판권 행사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는데 특히 미군 당국은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가뜩이나 감정이 좋지않은 이 시점에서 폭행사건 처리마저 잘못돼 불에 기름을 끼얹는 형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SOFA는 이제 운용상의 개선이 아닌, 현저히 불평등한 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어차피 가야한다. 이같은 문제 제기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고 자신들에게 있는 사실을 미국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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