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컬럼/무소유의 대통령으?

인간에게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 재산이다. 더러는 재산을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이가 없지 않다. 누구든 갖고자 하는 노후대책, 자신은 죽어도 자녀들에겐 유산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사후대책, 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이 범부들의 인간적 상정이다. 극히 드문 예로 유산 안물려주기운동을 갖는 어느 명사들 모임이 있고, 전 재산을 장학사업이나 사회에 내놓는 독지가들도 있긴 있다.하지만 노력의 대가로 재산을 모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자연법적 권리의 순수한 욕망이다.

이제 와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더 할 말은 없다. 임기를 불과 68일 남긴 이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저 건강하길 바랄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것은 있다.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 환란극복의 각광을 받던 대통령이 처음으로 정치적 곤경에 처했을 적에 이 지면을 통해 고언했던 게 있다. 정치초연, 검찰독립의 제도화를 촉구하면서 전 재산의 사회헌납을 주청했다. 임기 중엔 청와대에서 다 생활해주고, 하야하면 국가에서 여생을 보장하는 마당에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 금융자산, 부동산, 아태재단까지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 때가 1999년 6월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한창 힘을 지녔던 시절이다. 그 후 수차 고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결국 외면됐다.

대통령 재산의 사회헌납은 개혁 표방에 큰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강력히 주청했던 것이다. 예컨대 개혁은 크게는 집단이익을 삭감하거나 박탈하고, 작게는 개인의 밥그릇을 줄이거나 빼앗는 기득권 침해 작업이다. 개혁은 또 모든 국민에게 고통분담이 돌아간다. 개혁을 앞장서 독려하는 대통령부터 그 자신이 뭣을 먼저 내놓고, 또 고통을 스스로 분담해 보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국민역량을 결집할 도덕성의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패척결도 역시 같다. 대통령부터 재산을 내놓고 부정을 엄단하는 터에 누가 감히 권력형 부패를 꿈꾸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재산을 내놓은 결연한 의지로 부정부패 척결을 말했다면 공적자금을 둘러싼 무성한 비리가 지금같진 않고 두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는 불행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유능한 대통령도 모든 국민에게 다 만족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집단이기, 지역이기, 개인불만을 그래도 비교적 잠재울 수 있는 상징성이 곧 재산헌납이다. 사심없이 일하는 대통령상이 담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에도 국민적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재산헌납을 하는 결연한 각오를 보였더라면 후계자가 ‘DJ정권 실정 문책’을 외치는 지금같은 임기말의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지내면 독신의 성직자에게 재산이 필요없는 것처럼 재산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무소유의 해탈은 곧 이기심과 자만심과 사리사욕의 기속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여기에 파벌이나 측근 또는 부정부패 같은 게 접근할 수는 없다. 대통령쯤 되면 범부로 보지 않는다. 세간엔 범부의 독지가들이 있어 그 소중한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마당에 범부가 아니여야 할 대통령이 재산에 연연해서는 범부보다 낫다 할 수 없다.

대통령 재산의 헌납을 가리켜 “내 건 내 것이고 나라 건 나라 것”이라며 폄훼한 누구의 말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직의 도덕성을 외면하는 소리다. 다음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편히 잘 살게 할 것처럼 서로 다투어 기염을 뿜었지만 그렇게 판단되지 않는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무소유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사심없이 일할 대통령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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