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1세 '추억의 경의선'

“방학때만 되면 경의선 열차를 타고 외가인 평안북도 선천에 오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하루빨리 철도와 도로가 복원돼 고향인 개천까지 단숨에 내달리고 싶습니다.”

평안북도 개천이 고향인 경기도이북도민회 연합회장 장암씨(73)는 경의선에 대한 어릴적 추억을 되살리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었다.

남북에서 역사적인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가진데 이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새해에는 50년간 끊겼던 남·북간 육로가 개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분단 이전에 경의선 열차를 타고 남북을 왕래했던 실향민들이 구랍 27일 오전 경기도이북도민회 연합회 사무실에 모여 추억의 경의선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장씨는 방학마다 어김없이 외가인 선천에서 머물면서 친구들과 함께 경의선 열차를 타고 종착역인 신의주까지 오가곤했다.

신의주에서 걸어서 2㎞의 압록강 철교만 건너면 중국 대륙의 단동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동에 들어가면 담배, 찹쌀 떡, 사탕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당시 압록강 철교를 건너기 위해 일본 수비대 군인에게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인 전처록씨(77)는 “화물차 뒤에 객차 2량을 연결해 다니는 정주-신의주간 통근열차는 항상 만원이었다”며 “기관사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승무원이 타는 곳을 이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제말기에는 일본 형사들이 독립군 등을 잡으려고 경의선 객차에서 몸수색을 강화했다. 이때문에 서울 등 남쪽에서 경의선을 탄 이용객들은 일본 형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고 회상했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이선행씨(80)는 “고향에서 40∼50리 떨어진 박천군에 경의선 기차역이 있어 고향사람 대부분이 경의선을 이용했다”면서 “당시 석탄을 실은 화물차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세기 이상 끊겼던 철도를 잇는 것만으로도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경의선 뿐만 아니라 경원선, 판문점 길도 이어져 한민족인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로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향민들은 추억의 경의선 개통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면서도 “경의선 개통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략적인 개통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며“북측이 남한당국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의도인 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우려도 표시했다.

/글 정근호기자 사진 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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