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컬럼/정치미아와 내각제

정치미아와 내각제

이발사가 든 면도칼엔 안도감을 갖는다. 이단이 든 면도칼엔 불안감을 갖는다. 신뢰의 차이다. 면도칼 자체가 정서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고 그것을 쥔 사람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갖는다. 난데없이 모락모락 나는 내각제 연기가 이를 연상케 한다. 면도칼, 즉 내각제 자체의 제도가 좋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정권을 거머쥐는 내각제는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정당정치의 꽃이다. 또 어느 정당이든 원내 의석의 과반수가 미달하면 연정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정권이 불안하다 철새 정치인의 횡포가 심해질 수도 있다.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라 할 권력 집중을 분산하는덴 내각제가 제격이긴 하다. 하나, 성공하지 못한 경험도 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 끝에 채택된 제2공화국의 내각제는 만병통치의 민주주의 처방으로 알았다. 그러나 당시의 민주당 정권은 신·구파로 갈라져 국정은 뒷전이고 싸움질로 영일이 없었다. 장면 정권의 제2공화국은 결국 집권 9개월만에 5·16군사정변으로 붕괴됐다.

근래 있은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의 내각제론 제기,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내각제 화답은 내각제가 정말 좋아서 그러는 것으로 믿기지 않는다. 다만 내각제를 구실 삼을 뿐이다. 김종필 자민련총재의 내각제 구실과 함께하는 정치적 자구책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형태로든 정치권이 개편될 것은 능히 예견된다. 민주당이 재창당하지 않으면 신당으로 거듭나면서 그 충격이 한나라당까지 파급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헤쳐 모이는 것은 거스릴 수 없는 대세다. 다만 한나라당이 받는 파장은 정당개혁의 성취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지난 대선은 적잖은 정치미아를 냈다. 정치미아들의 합종연횡이 내각제를 내세우는 것은 낡은 수법이다. 인삼 녹용같은 선약도 시기가 있다. 시기를 잘못 맞추면 선약도 독약이 된다. 설 땅이 없게 된 정치인들의 새로운 선택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내각제 거론은 공허하다. 오늘의 자신들 입장은 결과적으로 자초한 자기책임에 속하는 일이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다. 자기책임은 돌아보지 않고 공연히 붓타박만 하는 내각제 거론은 설령 정치세력화한다 해도 큰 메아리가 있을 것같지 않다. 구실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개선과 병행하는 정당개혁, 실물적 정치개혁의 흐름을 낡은 관념으로 타고 가려하는 배는 또 뒤집히기 마련이다.

그보다는 고해성사와 같은 반성속에 선택의 신념을 떳떳이 밝히는 것이 오히려 당당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잘되면 나의 탓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정당 풍토 또한 이젠 사라져야 한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는 물론 과장된 얘기다. 그런데도 선풍적 인기의 시청률을 나타내는 것은 가기 책임에 비겁하지 않는 사내들의 인간미 때문이다. 정치인도 성패간에 인간미를 보여야 대중의 지지를 받는 단계가 됐다.

내각제 개헌은 물론 앞으로 언젠가는 공론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패한 정치인일수록이 신뢰회복을 앞세워야 한다. 고통받는 처지일수록이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인간사가 그러한 것처럼, 시련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에겐 미래가 없다. 이 시점의 내각제 거론은 신뢰회복도 인내도 시련극복의 의지도 아닌 편의적 논리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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