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정몽준의 '축구.정치' 혼선

대한축구협회는 사단법인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다. 30여 경기종목 단체가 가입된 그 중 일원의 스포츠 단체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취임 이후 한국축구는 그의 재정지원에 힘 입어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서 한국 축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의 한·일 공동 유치에 이어 이룩해 보인 한국축구의 4강 위업은 기적같은 신화를 실증,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토록 월드컵 본선 경기의 단 1승에 목말라 했던 한국축구가 대망의 16강 벽을 넘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파하면서 8강을 뚫고 4강 대열에 오르는 파죽지세의 승승장구로 국민은 온통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었다. 지난해 6월은 정말 행복했다. 이 국민적 드라마를 보여준 월드컵 대표선수들 뒤엔 히딩크 감독의 연출이 있었고, 또 그 뒤의 제작자로는 정몽준 회장이 있었다.

‘서명파’들도 정 회장의 공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에 출마하려거든 축구협회장 자리를 축구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일부 축구인들의 사퇴촉구 서명운동, 그것은 축구인들의 축구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충정은 불충스런 괘씸죄가 되어 중징계 처분의 철퇴가 내려졌다. 서명운동은 정몽준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정치색을 띤 것이었을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지지하고 말고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 것뿐이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한동안 노무현 당선자와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월드컵 감격 때문이었을까.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안정적 변화를 갈망하는 중망이었다. 비록 단일화 작업에 패배한 뒤 노 후보 지지철회 등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이긴 했으나, 한 때 그같은 중망을 받던 그가 축구협회 징계 파문과 무관하지 않은 건 유감이다. 한국축구는 내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이 당장의 과제다. 그리고 3년 뒤엔 독일 월드컵대회가 있다. 한국축구의 4강 수성엔 또 많은 난관이 기다린다. 정몽준 회장의 사퇴 가부에 대해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하고 말할 개재는 아니다. 축구인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사퇴촉구 서명인들을 중징계한 것은 정치에 큰 뜻을 품었던 것에 비해 지나치게 옹졸했다는 사실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몽준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협회 상벌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회장이 몰랐을리 없고, 모르지 않았다면 말리는 한편 사퇴 요구를 설득했어야 했다.

지난해 협회 상벌위원회가 내린 중징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 결산이사회가 추인하면서 밝혀지자 이젠 사면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축구인 150여명의 서명을 받은데 앞장선 축구 지도자는 자격정지 3년을 받은 이은성 경기도축구협회 부회장, 이풍길 전 실업축구연맹 부회장 그리고 자격정지 1년을 받은 박이천 부천 정명고 감독 등이다.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중징계에 불복, 법정 소송을 제기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설단체가 아닌 협회 회장 퇴진 요구에 축구인으로는 거의 사형이나 다름 없는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진 것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는 재량권 남용이란 게 주장의 요지다.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는 곧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가 있을 모양이다. 대한축구협회 회장도 사실상 기약없이 비어있게 된다. 그의 월드컵 공로가 빛바래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은 한국축구를 위해서다. 국민통합21 대표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겹친 혼선이 무척 신경 쓰이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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