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표준국민 K씨의 불안

K모씨는 올해 환갑을 맞는다. 35년을 몸 담았던 직장을 얼마전에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자영업을 한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살면서 저축해 일가족 생활에 큰 걱정은 없다. 그동안 세금 한 푼 탈세할 줄 몰랐고, 남 못할 일 시킨 적도 없다. 부동산 투기란 것도 그에겐 먼 얘기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2남2녀의 자녀가 있다. 자식들도 잘 키워 군대를 마친 두 아들은 다 제 몫의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맏아들, 맏딸을 결혼시켜 며느리, 사위를 보았다. 이제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을 금명년간에 짝을 지어주는 게 K씨에겐 가장 큰 소망이다.

그는 정치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자기 생활과는 관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일만 열심히 할 수 있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좋든 나쁘든 사람은 어차피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살게 마련이라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다고 재미 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운동에도 예능에도 일가견이 있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대인관계도 원만하여 오래 된 친구들이 많다.

K씨에겐 더 이상의 욕심이 없다. 그저 단란한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갖는다. 어린시절 못먹고 못살아 고생을 하다가 맨손으로 시작해 60 평생에 이룬 오늘의 가정이야말로 그에겐 성역이다. 세상 걱정이라고는 않던 그가 요즘엔 걱정이 적잖다. 세상이 하도 요란하기 때문이다. K씨는 반미주의자는 아니다. 미군이 철군하면 외국 자본의 이탈, 수출 악화로 나라가 어려울 것도 안다. 국방비 증액으로 재정에 어려움이 있게 되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든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부시의 오만에는 치를 떤다. 부시가 걸핏하면 내세우는 고압적 자세도 싫지만, 무엇보다 남북경협을 싫어하는 부시를 K씨는 싫어한다.

부시에게는 북이 이민족 이지만 우리에게는 동족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부시는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 말대로 “북에 군사력 사용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K씨는 어떤 형태이든 한반도에서 무력이 사용돼서는 안된다고 믿고있다. 함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미국에 갔다와서 한 말은 정말 이상하다고 그는 말한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주한미군 철수를 강도높게 언급하면서 남북관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한 말이 맞다면,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K씨는 북을 6·25를 일으킨 전범단체로 규정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에 집착하기 보단 현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아 남북관계의 개선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수십, 수백종의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눈엔 남과 북이 따로 비칠지 몰라도 단일민족인 우리의 눈엔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상선 대북송금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 K씨에겐 무척 불안하기만 하다. 비밀송금은 마땅히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그 역시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와서 사법처리하고, 앞으로 전직 대통령마다 법정에 세우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궁금해 한다.

K씨의 이런저런 상념은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나라 안팎으로 널려있는 막된 정치꾼들의 막가는 행위로 행여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지 작금의 조짐이 걱정스런 것이다. K씨는 나라의 이를테면 ‘표준국민’이다. 그리고 이런 표준국민은 K씨 말고도 많다. 정치권에서 좋은 말만 골라가며 하는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라가 안팎으로 몹시 혼란스런 시기다.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다. K씨의 불안을 기우로 끝나게 해야 하는 것도 역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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