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비밀송금. 알려진 돈만이 아닐지 모른다. 어떻든 모든 비난이 가능하다. 어떤 조치도 역시 불가하지 않다.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 하는 것 또한 맞다. 당장 눈앞의 잣대로 보면 변명이 있을 수 없다. 38선에 의해 분단된지는 58년, 휴전선에 의해 재분단된지는 50년이다. 앞으로 50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기성사회, 지금의 지도층이 하기에 따라 민족의 진운이 달라진다.
멀리 보아야 한다. 시대는 잣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를 위해 존재하는 잣대의 기준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역사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북진통일을 외치고, 반공·승공을 외치며, 대화의 창구를 다시 꽁꽁 닫아 빗장을 걸 요량이 아니라면 잠시라도 좀 더 멀리 보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햇볕정책은 이자리에서도 적잖게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의 논제는 과거의 과정이 아니고 결과로 드러난 현실이다. 평양 정권은 참으로 상대하기 힘든 사람들이긴 하다. 절대 불변의 원칙(남반부 혁명)에 무한 가변의(전술적) 변칙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은 좌익 타도로 건국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반세기 이상 거친 지금의 상황은 그게 아니다.
6·25 남침전쟁은 수백만의 사상자를 낸 참혹한 비극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전근대적 전쟁이었다. 만약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난다면 남북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상전벽해의 대량 파괴속에 시산혈해를 이룬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장담을 못한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한 곳이 50년만에 뚫려 육로가 트이고 경의선 연결을 앞두고 있다. 이 또한 북의 전술적 의도라 할지라도, 비록 갖다 퍼준 대가라 할지라도 엄청난 역사적 변화다. 뚫린 길이 다시 막혀서는 안되는 민족사적 위업이다. 그러나 이를 굳이 외면하려 든다. 성과는 외면하며 과정만 힐난한다.
그동안 공(돈)들인 것을 생각해서라도 어렵게 일군 기존의 남북관계, DMZ 개통 등은 어떻게든 유지돼야 한다. 뚫린 육로는 평화통일의 길목이다. 이 모든 것을 더 살려 나가야 하는 것이 민족의 미래 지향적 진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누군인가를 알고 싶다.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밝히는데 시기를 선택하는 비밀을 둘 때가 있다.
나라 망신 시켜가며 온갖 소릴 다하는 사람들 얘기 가운데 정말 듣기 거북한 게 있다. 부시가 남북이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싫어 하므로 (남북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은 미국 사람이 아니고는 못할 말이다. 아니 미국 사람 중에도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미국과 결코 등 돌리기를 싫어하는 우리에게 부시가 정녕 그런 것을 강요한다면 생각을 달리 해볼 수밖에 없다. 부시를 거부하는 것이 미국을 거부하는게 아니라는 판단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은 부시의 책임이다.
우리는 지금 대북, 대미의 삼각관계서 묘한 시점에 서 있다. 이 판에 대북송금을 극단으로 몰아대는 게 과연 이로운지 생각해볼 일이다. 중학교 기차통학하던 시절, 달리는 객차 승강구 난간을 붙잡고 발밑을 보면 어지럽던 게 생각난다. 시야를 멀리 보면 물론 달랐다.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발밑도 봐야할 건 봐야하겠지만, 보다 멀리 보는 큰 틀의 안목을 바라고 싶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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