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25일 개봉될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은 제목부터 역설을 담고 있다.
끔찍한 살인의 기억이 ‘악몽’이 아니라 ‘추억’이라니. 줄거리 전개에서도 많은 역설이 등장한다.
자료와 증거를 제일로 치는 서울 형사는 점점 시골 형사와 닮아가고, 육감과 고문에 의한 자백이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고 여기는 시골 형사는 오히려 폭력을 포기한다.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의 기획력과 제작 노하우, ‘플란다스의 개’로 주목받은 감독 봉준호의 꼼꼼한 연출솜씨, 충무로 캐스팅 영순위로 꼽히는 송강호의 연기력, 완성도에서나 흥행력에서나 충무로가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살인의 추억’은 익히 알려진 대로 86년부터 91년까지 10명의 부녀자가 숨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소재.
이야기는 벼가 고개를 숙일 대로 숙인 황금들녘에서 시작된다.
경운기 적재함에 타고 사건 현장으로 향하는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의 표정에는 뒤쫓아오는 아이들에게 손으로 ‘감자’를 먹일 만큼 여유가 묻어나온다.
그는 배수구 속에 박힌 피살자의 시신을 확인한 뒤 동네 불량배들을 잡아들이며 예전의 방식대로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두 달 뒤 비슷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하자 동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특진을 꿈꾸며 자원한 서울시경의 형사 서태윤(김상경)이 가세한다.
이때만 해도 박두만의 얼굴에는 여유만만한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지체 증세를 보이는 용의자 백광호(박노식)를 족쳐 자백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검증에서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한다. 서태윤은 화상으로 붙어버린 백광호의 손가락으로는 피살자의 목을 끈으로 조른 뒤 매듭까지 지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백광호도 기자들까지 모여든 현장에서 범행을 부인한다.
범인은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지문이나 털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을 대충 기억하는 사람은 미궁에 빠진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형사와 형사, 형사와 용의자, 수사팀과 주변인물간의 캐릭터 대결이 한껏 당긴 활시위와 활처럼 팽팽하기 때문이다.
특히 송강호는 그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었다는 느낌을 줄 만큼 관객을 웃겼다가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한다.
영화에서는 등화관제 훈련, 반정부 시위 등을 살짝살짝 비추며 당시 공권력이 연쇄살인에 그토록 무력했던 까닭을 은유한다.
■마지막 수업
무대는 프랑스 중부의 고원지대의 오지 오베르뉴 마을. 이야기는 소형 승합차가 등교하는 아이들을 차례로 태우고 눈덮인 좁은 길을 따라 학교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살짜리 코흘리개서부터 막 사춘기를 맞은 초등학교 졸업반까지 한 교실에 모여 공부를 한다. 교편생활 35년째를 맞는 조르주 로페즈 선생님은 정년을 맞는 마지막 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처럼 똑같은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글씨쓰기, 색칠하기, 받아쓰기, 구구단 등을 꼼꼼하면서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가 하면 요리를 함께 만들기도 하고 눈썰매를 태워주기도 한다. 10여명의 아이들이 그야말로 십인십색이지만 로페즈 선생님은 늘 공평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규칙이다. 약속한 분량을 다 색칠하지 않고는 쉬는 시간에 놀 수가 없다. 친구와 다퉜을 때는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나서는 것도 안된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는 일. 백까지도 셀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다섯을 넘어가면 헷갈리기 시작하는 조조, 틈만 나면 남의 발표에 끼어드는 똑순이 마리, 구구단은 잘 외우지 못해도 집안 일은 척척 해내는 줄리앙, 자폐증 증세로 선생님을 안타깝게 만드는 나탈리…
나무 그늘 아래 야외수업을 하는 장면과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가는 광경도 아름답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울적했던 사람이나 일이 잘 안풀려 짜증을 내던 사람도 마음이 씻은 듯이 맑아질 것이다.
니콜라 필리베르 감독은 프랑스 전역을 샅샅이 누비며 오베르뉴 마을의 생테티엔 쉬르 우송 학교를 찾아냈고 로페즈 선생님과 아이들을 설득해 2000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카메라를 들이댔다.
■보리울의 여름
25일 개봉하는 영화 ‘보리울의 여름’(제작 MP엔터테인먼트)은 선(善)한 영화다.
이 영화의 소재인 축구나 종교가 그렇듯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이며 간혹 마찰은 생겨나지만 도를 넘어서 싸움이 되지는 않는다.
자극적인 대사나 극적인 반전은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은 듯한 이 영화의 관람포인트는 신부님과 수녀님, 스님 등 세 명의 주요 캐릭터.
아이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는 수녀님. 원장수녀와 싸우고 가출하는 신부님, 겉으론 엄한 척하지만 취미란 게 TV연속극 보면서 눈물 흘리기인 원장수녀 등 캐릭터들과 이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주는 웃음은 폭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잔잔한 웃음으로 관객들을 뿌듯하게 만든다.
흠이라면 세 캐릭터 사이에서 관객들이 자신을 이입시킬 만큼 비중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 김신부의 시선이나 형우의 관점에서 영화를 풀어나갔더라면 영화에 몰입이 더 쉬울 듯하다.
가난한 시골마을 보리울. 한적한 이 마을의 보리울 성당에 이제 막 사제 서품을 받은 김신부(차인표)가 도착한다.
첫 부임지에서의 의욕으로 가득찬 김신부. 하지만 ‘깐깐’해 보이는 원장 수녀와 푼수끼 있는 젊은 수녀, 게다가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아이들의 경계하는 눈빛 등을 보면 이곳 생활이 쉬울 것 같지는 않는다. 같은 날 초등학생 형우(곽정욱)도 6년 전 출가한 아버지 우남스님(박영규)과 여름방학을 함께 지내려고 마을을 찾는다.
도시 소년 형우에게 ‘깡촌’ 보리울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을 듯. 게다가 오랫동안 못봤던 아버지 우남스님과의 관계도 어색하기만 하다.
어느날 여자아이 동숙(배종은)이 주축이 된 이 마을 아이들은 읍내아이들과의 햄버거 내기 축구시합에서 대패하고 우남스님에게 축구감독을 맡아주기를 부탁한다. 이들의 첫 시합상대는 성당아이들. ‘절팀’은 ‘성당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한편, 성당 아이들은 ‘절팀’에 대패를 당하고 풀이 죽어 있다.
김신부는 아이들이 다칠 것을 걱정하는 원장수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팀을 만들기로 하고 훈련을 시작한다.
드디어 두 팀간의 재대결이 펼쳐지고 수중전으로 벌어진 경기에서 양팀은 무승부를 기록한다.
축구를 통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한 ‘절팀’과 ‘성당팀’. 이들은 단일팀을 구성해 읍내 축구팀에 도전하기로 하는데…영화가 잔잔한 웃음을 전해주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한 것은 과장되게 꾸며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 여기에 가수 이문세의 노래들을 작곡했던 이영훈씨가 맡은 영화음악도 서정적인 화면을 잘 살려내고 있다.
■인터뷰/똥개의 곽경태감독
곽경택 감독이 영화 ‘똥개’로 명예회복을 준비중이다. ‘챔피언’의 흥행 저조, 배우 유오성과의 불화, 무혐의로 결론이 난 조폭자금지원설 등 지난 한해는 ‘친구’로 전국 820만 신화를 창조했던 곽감독에게 최악의 한해였다.
경남 밀양에서 재기작 ‘똥개’를 촬영중인 곽경택 감독을 16일 오후 만났다.
‘똥개’는 별다른 꿈도 없고 어리숙하지만 착한 심성에 의리도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영악하지 못한 사람의 정의가 무시당하는 현실을 그렸다.
주인공으로는 톱스타 정우성이 출연해 경찰 반장인 아버지역의 김갑수, 아버지가 데려오는 전직소매치기 정애역의 엄지원과 호흡을 맞춘다.
정우성을 캐스팅한 이유는 ‘잘생긴 배우’라는 이미지 외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 “정우성씨 만나보니 느리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의리가 있는 주인공 철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개’는 ‘억수탕’, ‘닥터k’, ‘친구’, ‘챔피언’으로 이어지는 곽감독의 연출작 중 가장 웃음이 많이 들어 있는 영화. 그는 최근 유행하는 코미디 영화들에 대해 “지나치게 밝거나 드라마적 설정이 너무 많이 무시된다”며 “‘똥개’는 드라마가 강한 코미디라는 점에서 이들 영화와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상업영화 감독에게 관객의 반응이 제일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코미디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심히 해보고 관객들의 코드에 맞기를 바랄 뿐이죠”
영화속 배경을 밀양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충청도나 전라도를 배경으로 할까 생각해 실제로 이 지역 몇개 도시를 돌아봤지만 부산 토박이인 내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똥개’ 제목이 관객에게 부담스럽지 않겠냐고 묻자 그의 ‘똥개 예찬론’이 시작됐다.
“똥개는 멋있거나 영리하지 않지만 정이 있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도 밥그릇을 빼앗기면 용감해지기도 하죠. 경험으로 두글자 제목이 흥행에 좋았다는 아내의 말도 설득력이 있고요”/연합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