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순방결과를 놓고 논란이 많아 어리둥절하다.
취임후 첫 해외 방문지이자 개인적으로도 처음 미국 땅을 밟는 일이라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당선자 시절 사진이나 찍기위해 역대 대통령들처럼 방미하지 않겠다며 자주외교를 외치던 노대통령은 취임이후 70여일만에 공식적으로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방미의 주요과제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해결 원칙의 확인이었다. 나아가 한·미간 동맹관계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해소하고 이로 인한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빨리 해소해 경제회복 등 여러 현안을 풀어나갈 수 있는 토대 마련이 시급했다.
대통령을 수행한 기자도 시차때문에 최악의 상태에서 취재했지만 노 대통령 역시 ‘분단위’로 쪼개진 바쁜 스케줄을 진솔한 리더십과 확고한 정책비전을 갖고 집중적이고 적극적인 행보로 모두 소화해 냈다.
그러나 방미중 놀란 것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있는 생각이었다. 노 대통령은 반미주의자 아닌가, 한국의 젊은층이 미국을 싫어한다는데 사실인가, 그리고 한·미 동맹관계에 배신감을 느낀다 등등….
이같은 이미지는 균형적인 한·미관계를 추구하는 대통령의 입장이 반미 이미지로 곡해되면서 과연 미국과 제대로 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지, 우려와 불안의 목소리가 교포뿐 아니라 미국 워싱턴 정가에 팽배해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뉴욕과 워싱턴에서 정치, 경제인들과 만나 우리의 경제정책과 동북아 경제중심 비전을 설명했고, 한·미 공조강화, 노대통령 제대로 알리기 등 다각적인 노력이 경제와 안보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된 현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했다. 특히 이같은 대화는 양국 대통령간에 신뢰감을 확보하고 주요현안에 관해 이해와 공조의 기반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노 대통령은 미국이민 100주년을 맞은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동포간담회를 열어 “저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과 우려를 말끔하게 해소해 놓고 가겠다”며 “어느 누구보다도 더 훌륭한 과업을 수행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으며 그들의 걱정과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켜 주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미국에 나쁜 소리나 듣기싫은 소리를 하여 외교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면 오히려 우호 동맹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예의를 지키면서 우호적인 발언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도 노 대통령에게 한국에 대한 칭찬의 말과 감사의 뜻을 거의 행사때마다 전달했다.
청와대는 “한국측이 받은 찬사는 빼고 미국측에 건넨 발언만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이번 방미외교의 대원칙은 ‘국익을 우선하는 실용주의 외교’였으며 미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감성적 접근’과 미 정부를 상대로 한 ‘전략적 접근’ 이었지 ‘저자세 외교’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끝내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국을 떠나면서 걱정과 희망을 함께 가지고 왔으나 부시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눈뒤 걱정은 벗어버리고 희망만 갖고 한국으로 돌아가게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여당인 민주당에서까지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마저 잃어가는 저자세 외교 등을 비판하고, 급기야는 5·18 기념 행사장에서 한총련 학생들은 ‘굴욕적 사대외교의 전형’이라며 노 대통령의 정문 입장을 봉쇄하는 등 저자세 외교에 대한 반발이 거세고 거칠었다.
노 대통령은 매일 선택의 기로에서 국민과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하다보니 이론과 이상보다는 현실과 국제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용주의 입장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세이거나 고자세이거나 하는 감정적인 문제의 개입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현실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핵 위기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미국이라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미국이 남한정부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반도가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기어서라도 가야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 아닐까.
이번 방미는 성과만큼이나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걱정과 희망중에 희망만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이제부터다.
/유제원.정치부 부국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